아니 실패가 성공의 엄마라니까.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
이 말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나는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이 말의 뜻을 알지 못했다.
무슨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지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딱 그 정도에 불과했다.
"실패를 해봐야 한다."
뭐 평범하게 나이를 먹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얘기할 수 있는 그런 말들 중 하나.
유튜브에서 봤었나.
어떤 것을 외우고 싶으면 그것이 아니라고 계속 강조하라고.
"내 이름은 김수윤이 아니야."
"내 이름은 김수윤이 아니라고."
"내 이름은 김수윤이 아니라니까?"
"내 이름은 김수윤이 아니야. 알겠어?"
아쉽게도 내 이름은 김수윤이 맞다.
그러나 덕분에 내 이름을 외웠다.
이렇게 강조하듯이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를
천천히 해석해 보았다.
왜인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고등학교 3학년 첫 수능을 망치고
재수를 들어갈 무렵 즈음에
혼자서 외로이 감성을 타고 있었을 때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
그러면 성공 위에 실패가 있는 거잖아.
(한창 생명과학에서 유전을 하고 있을 때였다.)
아 그러면 '실패' 부모님이 '성공' 자식을 낳았네.
아아 그래서 실패가 성공을 낳는다는 거구나."
이 쉬운 말을 스무 살이 되고 나서야 본질적인 뜻을 해석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실패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수 있었고,
그 이후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아프지 않다는 말은 아니다.
많이 아프고 많이 쓰리다.
그 아프고 쓰린 마음을 알기에
다음을 우리는 준비할 수 있다.
최근에 기조연설에서 페이커님이 연설하신 것을 보았다.
한 말씀 한 말씀이 모두 진심 어린 조언이었고,
모든 말들은 실패라는 한 점으로 모여
성공을 향해서 가리키고 있었다.
어느덧 스물다섯이 된 나 역시
나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 안에서 많은 실패들을 했었다.
아픈 과거이지만, 잊고 싶지 않은 추억이고
그때의 내가 없었다면 지금의 내가 없었을 것이다.
여러 실패들이 모여 하나의 성공이 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과정 안에서
무너졌을 때, 넘어졌을 때
일어서는 법을 배운다.
그러니까.
무수히 많은 실패보다
더 무수히 많은 것을 배우기 마련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