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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준생 Feb 08. 2024

#06 다정한 그대 이름 '공표배'

입문자 차준생의 茶이야기

"뜨거운 것을 못 잡는 너를 위해 손잡이를 준비했어. 물을 잘 흘리는 너를 위해 수구도 준비했고, 네가 찻잎을 잘못 걸러 찻잎을 먹게 될까 봐, 거름망도 준비했어. 그래도 혹시 몰라 뚜껑까지 준비했단다. 이제 맛있게 네가 좋아하는 차를 마시렴."라고 표일배(공표배)는 내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렇듯 표일배는 참으로 다정하고 다재다능한 다기이지만, 최근 개완을 장만한 이후 조금 등한시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지, 개완보다 좀 덜 예쁘고, 폼이 안 난다는 이유로 내게 이런 대접을 받고 있었던 것이 조금 미안할 지경이다. 당연히 이런 다재다능한 이점들 때문에 개완보다 표일배가 훨씬 나 같은 입문자에게 어울리는 다기 임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무엇이든 첫인상과 이미지가 중요할 터, 나에게는 차생활을 생각하면 저렇게 만능형 다재다능한 다기보다는 아기자기한 도자기로 된 다기들이 깔려있는 모습을 상상하고는 했었다.


처음에도 간략하게 언급했지만, 표일배에는 일단 차를 우려낼만한 웬만한 기능들은 다 갖추고 있다.

제품마다 틀리겠지만, 수구와 손잡이가 있는 몸채에 내포하고 있는 거름망, 그리고 뚜껑까지, 참으로 다정하게도 손이 닿는 부분은 뜨거울 까봐 플라스틱이나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 웬만한 차들은 이 표일배 하나와 

찻잔만 있다면 어디서든 차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내가 사용하는 표일배는 '공표배'라고 하는 차 맛을 해치지 않기 위해 거름망 부분과 몸통 부분을 유리로 특별히 제작한 아주 귀한 물건이다. 이렇게 보니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라고 나 같은 입문자에게는 과분한 물건을 들고도 개완이 더 예쁘다는 이유로 이 공표배를 등한시한 본인이 부끄럽기도 하고, 운이 좋아 좋은 차와 좋은 다기를 들고 시작했는데, 차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이제야 내가 운이 좋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말이지 특히 차생활 중에서는 알면 알수록 새로이 보이는 것들이 많다. 오늘 소개한 공표배만 해도 그렇다. 처음 차와 다기를 선물 받았을 때는 그냥 좋은 차와 좋은 다기 정도 생각이었는데, 개완도 써보고 다른 다기들도 알아보면서 내가 사용하는 다기들의 귀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차주전자도 하나 갖고 싶어 하는 나의 못 말리는 '장비욕'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작년 친구들과 등산을 한답시고, 이런저런 고어텍스 제품이나 트레킹화들을 잔뜩 알아보고, 실제 몇몇 제품은 구매했지만,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제품들도 있다. 특히 고어텍스 방한 장갑, 알록달록 한 것이 상당히 올드 스쿨 감성의 디자인이라 정말 마음에 들어 했는데, 결국 이대로라면 영락없이 당근에 헐값에 내놓아야 될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차주전자의 구매는 좀 더 신중해야 될 것 같다.


현제는 백차와 같이 찻잎이 커서 걸러내기 쉬우며, 빠르게 우려내야 하는 차들은 개완을 사용하고, 찻잎이 작고 느긋하게 우려내도 되는 숙차와 같은 차들은 표일배(공표배)를 사용하고 있다. 현제 나의 실력으로는 이렇게 사용하는 편이 가장 맛있는 차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다음 기회가 된다면 여러 차들은 물론이요, 여러 다기들도 직접 사용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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