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현제 나는 제법 바쁘게 일상을 보내고 있다.
여행을 다녀왔고, 또 여행을 앞두고 있으며,
운이 좋게도 실습자리에 공석이 생겨,
원래는 7~8월에나 가능했던 실습을
남들보다 조금 일찍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기에 이래저래 준비할 것들이 많은 시절을 보내던 중
어머니께서 나를 부르셨다.
"너 3월 00일 나갈 거니?"
"아니요, 그날 별다른 일정은 없는데요"
"그럼 너 그날 좀 나가 놀아라."
"네에? 갑자기? 왜요?"
"그날 목사님 신방오신다고 해서..."
"그냥 내 방에 조용히 있으면 안 돼요?, 나 할 일 좀 있는데..."
"웬만하면 나가, 그리고 목사님 신방 오신다고 하시니까,
나가서 마당이랑 계단 있는데 좀 쓸고 닦아놓고..."
"... 네엡"
그렇게 그날이 다가왔다.
나는 눈뜨기가 무섭게 어머니께 등 떠밀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나가야 했다.
(물론 그전날 마당과 계단은 나무랄 데 없이 아주 깨끗이 청소를 해 놓았다.)
그렇게 나가는 길에 주방을 슬쩍 보니, 손님맞이로 어머니는 분주하게 움직이고 계셨다.
아마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오늘 우리 집에 큰 경사가 있어
잔치라도 여는 것이이라 착각할 정도로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이 준비되고 있었다.
과연 저 휘향 찬란하고 형형색색의 예쁘고 맛있어 보이는 음식 중에
내가 돌아왔을 때 남아있는 것이 몇 가지나 될까? 생각하니 어머니가 조금(많이) 야속했다.
그래도 청소까지 다했는데 내 몫이 없다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이래저래 이러한 생각을 하며 잔뜩 뾰로통해져 집을 나섰다.
그렇게 그날은 대형서점을 전전하기도 하고,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던 번화가의 브랜드에 들어가 옷구경도 하고,
한가한 친구를 찾아 전화번호부를 뒤적이기도 하고,
그러다 찾은 한가한 친구의 회사 앞으로 가 퇴근을 기다리며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그렇게 찾은 한가한 친구와 식사도 하며 한참을 떠들기도 하고,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게,
그럭저럭 재미있게 하루를 보내고는 집으로 들어왔다.
집으로 들어오는 길 뭔가 여전히 뾰로통한 기분으로
'나는 분명 어디서 주워왔을 거야...'라는
웬만한 성인이라면, 하지 않을 유치한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콩쥐 내지 신데렐라도 이런 기분이려나?'
그렇게 돌아온 나에게 어머니는 당연하다는 듯,
지난 남은 음식을 내어 주셨다. 하지만 맛있었다.
너무너무 맛있어서 뾰로통했던 기분도 잊어버리고는
우걱우걱 음식들을 입에 잔뜩 쑤셔 넣으며,
오늘 있었던 일들을 재잘재잘 어머니께 신나게 잘도 떠들어 댔다.
오래전부터 생각했던 것인데, 나는 삐치는 것에는 정말이지 소질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