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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동

by 송유성

이미 멀건 흰죽도 더 멀겋다

그 속에 당신

잠겼다

아지랑이처럼

화장실에서조차 숨어 피더라

딸은 능금처럼 익어간다

방부제도 약인가 와 닿는 계절

다이아몬드나 집은 얼마인지 몰라서

몇 개나 몇 채나 사준다고 말하는 댕그란 눈동자에 찔린다

소주는 천몇백 원 담배는 조금 더 비싸고

너희는 키울 수 없을 것만 같다


서러운 모든 시간엔 제목을 붙여 정리해 두었는데

옥구슬 굴러가듯 웃던 시절은 이름을 붙일 새도 없다

그런 것도 억울한데 주름은 주름 곁에서 더 옮는다

한 남자가 책을 곁에 앉히며 구해준다길래

따라나섰다가

남자는 가고 여기서 두 칸짜리 방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맑음만 둘 남았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점점 자라나며 숨겨둔 뒤 칸을 볼 수 있는

키가 무섭다

자라나지 말고 우리 시들어가자


숨긴 푸른 약

꺼내 드는 공수표 같은 행복

나를 닮아버리면 어쩌나

정말 어쩌려고 저러나


손찌검은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 집 담벼락에 핀 꽃도 때를 잘 못 알고 핀다

취해버린 이유보다

잡혀들어간 결과만 남는 것 같다

우리 애들 참 예쁜데


어제 경전처럼 외우던 소망은

첫 줄부터 더듬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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