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멀건 흰죽도 더 멀겋다
그 속에 당신
잠겼다
아지랑이처럼
화장실에서조차 숨어 피더라
딸은 능금처럼 익어간다
방부제도 약인가 와 닿는 계절
다이아몬드나 집은 얼마인지 몰라서
몇 개나 몇 채나 사준다고 말하는 댕그란 눈동자에 찔린다
소주는 천몇백 원 담배는 조금 더 비싸고
너희는 키울 수 없을 것만 같다
서러운 모든 시간엔 제목을 붙여 정리해 두었는데
옥구슬 굴러가듯 웃던 시절은 이름을 붙일 새도 없다
그런 것도 억울한데 주름은 주름 곁에서 더 옮는다
한 남자가 책을 곁에 앉히며 구해준다길래
따라나섰다가
남자는 가고 여기서 두 칸짜리 방과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맑음만 둘 남았다
괜찮은가 싶다가도
점점 자라나며 숨겨둔 뒤 칸을 볼 수 있는
키가 무섭다
자라나지 말고 우리 시들어가자
숨긴 푸른 약
꺼내 드는 공수표 같은 행복
나를 닮아버리면 어쩌나
정말 어쩌려고 저러나
손찌검은 할 수 있는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우리 집 담벼락에 핀 꽃도 때를 잘 못 알고 핀다
취해버린 이유보다
잡혀들어간 결과만 남는 것 같다
우리 애들 참 예쁜데
어제 경전처럼 외우던 소망은
첫 줄부터 더듬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