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iós

by 송유성

‘당신’하고 생각하면 어디에선가 길잃은 아이가 울며 먹고 있는 젖은 막대사탕이, 늦은 봄 얼룩덜룩 지고 있는 벚나무가, 어떤 깊은 시골에 버림받듯이 살아가는 늙은 염소가 먹어가는 풀 비린내가, 가보지도 않은 지리산의 고독한 숲 바람 같은 것들이 생각났다.


나는 당신을 왜 그리 그리워하고 안타까워했는지 수많은 밤을 생각했지만 그를 만날 때도 헤어지고 나서도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속절없고 헷갈리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랑이라면 그것 자체가 이유라고 납득하고 마는 내가 있을 뿐이었다.


당신이 떠나고 짙은 안개가 베갯잇을 채우는 밤이 올 때면 가끔 내 예전 시인이었던 애인이 생각났다. 그 아이가 나의 슬픔을 대신 안아서 써 내려가던 시들이 갑자기 떠오르곤 했다. 나의 앞에서 언제나 해맑게 웃고 있던 그 아이의 시들은 내 인생의 슬픔을 등에 업고서 하릴없이 무너지곤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당신을 만나며 사랑으로 글을 써 내려가던 옛 애인의 웃음 뒤에 숨겨져 있던 수많은 슬픔과 낙담 그리고 끈기 있던 사랑을 뒤늦게 공감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일이란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아야 했다. 남들보다 감정보다 이성으로 산다고 착각한 당신과 거리를 두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오류를 범한 내가 있었다. 사실은 전혀, 우리는 처음부터 거리 따윈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0과 1만 있을 뿐이니까. 수많은 밤을 자지 못하고 열렬히 읽어간 서로가 긴긴 장문으로 존재했으니까.


나는 지하철역에 구걸하는 사람을 보고 있자면 어딘가 조금 가렵고 마음이 불편해진다. 만약 수중에 현금이 있으면 그의 진실이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내주고 싶은 사람이 나란 사람이다. 그런 불가항력에 나는 언제나 패배하고 마는데, 패배하는 나를 막고 싶은 생각도 없이 살아간다. 당신은 불로소득을 쉬이 얻는다며 그런 분들을 좋게 보지 않았다. 일을 할 수 있다면 일을 하는 것이 맞고, 우리가 돕더라도 그들의 인생이 하잘 나아간다는 보장이 없으니 외면하는 쪽을 택하던 그였는데, 그가 뭘 모르는 것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패배하는 것이 재질인 사람이어서 당신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가 떠나고 이제껏 숱한 연애를 해왔음에도, 또한 연애하는 것에 있어 그리 어렵지 않은 선택을 받는 한 여자로서 살아왔음에도 왜 그를 그토록 애원했는지에 대해서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자꾸 알 것 같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구원이 보였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누군가를 구원할 자격이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했거늘 그의 인생을 ‘구원’씩이나 할 수 있다고 어쩌면 위선을 떨고 있었나. 하고 생각했지만, 그저 ‘나야. 사랑을 한 거야.’라고 다독이곤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하기가 어려운 순간이 도처였다.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사랑을 해서 힘들었지만 좋았다. 좋다, 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이별과 모든 사랑으로 고민하는 책들이 나의 이야기인 것만 같고 그런 일반화가 가능한 연애라면 흔한 사랑과 이별일 테야. 그러니 곧 지나갈 거야. 하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사랑스러운 내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일반화로 그를 그토록 사랑한 것을 내가 빨리 낫자고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아주 오래도록 열심히 아프고 싶은 것 같다. 나쁜 사람이 아닌 상대를, 어리고 유약해서 떠나간 상대를 그토록 사랑할 수 있었던 일을 수긍한다. 누군가의 인생에는 한 번도 찾아오지 않을 시절이었을 것이다.


그가 명명백백해서 좋았다. 숨김없고 가감 없는 사람이어서 나를 주는 것이 아깝지 않았다. 가끔 엉뚱하게 그 사람은 혹시 신이 보내주신 전령 같은 건가 하는. 고난길을 걸어야 ‘하필’ 하고 발음하다가 ‘그랬지’ 하고 웃고 말게 하는 삶의 찬란한 순간들을 주러 온 전령 같은 건가 하고서.


나의 전령은 임무를 수행하고 떠나서 그의 세상으로 돌아갔지만, 우리의 이야기는 당신의 바이블에도 나의 바이블에도 몇 줄로 쓰여져 삶에 잘 녹여내며 살아가겠지. 계절은 가도 어김없이 어떤 꽃은 또 움트느라 바쁘다. 우리도 그렇게 부지런히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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