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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을 뜯는 것도 좀 귀찮습니다

by 송유성

기차를 타고 가다가

새 모양의 스티커가 유리창에 붙은 것을 봤다

새는 유리를 못 보고 부딪혀 죽어버릴 만큼

멍청한 걸까 생각하다

사람도 사랑에 빠지니까 그럴 수 있겠다 한다


월급의 반 정도는

월세랑 공과금이랑 대출금 같은 것이고

또 반 정도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식비랑 생활비 같은 것이고

그러면 과반수가 의식주라는 말인데

그래서 사람은 사랑도 짬내서 해버리나

사랑을 해서 자손을 낳아야 인류가 망하지 않으면

이건 좀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지 않나

자본주의가 아니고 사랑주의인 이데올로기를 제창하고 싶은데

자라나는 발톱을 깎는 일에도 바쁜 나는

아마 혁명은 못 일으키겠다


점을 보러 갔는데

나보고 보살 사주란다

내가 이런 사주만 보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난단다

무당들은 전부 극 F인가 싶다

실은 공감해 주는 돈을 받는 직업일 수도

혼자서도 잘 지내는 사람이

둘이서도 잘 지낸다는데

모두 혼자서 잘 지내는 연습을 평생하다 죽는 것 같다

그러면 차라리

아주 빨리 둘인 것이 나은 것도 같고

지옥행 급행열차인 것도 같고

저기요, 신님.

인생은 두 번 정도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연습 게임을 해보던데요

한번은 실패해도 다음엔 좀 잘 살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는 휘슬소리를 잘 못 듣고 출발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출발선부터 실격일 수도 있잖아요


자꾸 시간의 테투리로 밀려가는 것 같다

안을 수 있는 것은 말라가는 내 가슴

가슴은 사실 아이를 위한 말랑함이 아니라

자기 연민 때문에 존재하는 것 같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사탕 같은 거 받아먹으면 안 돼

근데요,

죽어도 괜찮으니

누가 주는 달달함 같은 것을

한 번쯤은 먹어보고도 싶어요

잘 때는 문을 잘 잠그고 자란다

안 잠그고 자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집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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