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우등생이랍니다

by 송유성

그 사람은 말하는 것을 어려워해요. 한국인이라고 다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니란 것을 그 사람을 만나면서 알았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본인의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말을 사용하는 데요, 그 사람은 본인의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침묵을 사용해요. 덕분에 저는 아주 오랫동안 침묵을 읽는 방법을 익혔답니다.


사람을 공부해 본 적 있나요. 그 사람을 만나고 전 한 사람을 눈으로 좇고 따라다니고 손가락을 쳐다보고 시선의 끝을 따라다녀 보았어요. 저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잘하는 우등생이었지요. 저는 독학해서 공부하는 것이 편한 사람이어서 그 사람도 혼자 공부해도 합격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시험마다 전략을 다르게 세워야 한다는 것도 많은 밤을 슬퍼하면서 알기도 했지요.


사람들은 모두 공부하는 방법이 다르지요. 누군가는 읽기만 하고 누군가는 문제집을 풀고 누군가는 체득하고요. 저는요. 공부할 때면 많이 읽고 써요. 열심히 이해하고 분석한 것을 쓰고 정리해서 내 것으로 환원하죠. 그래서 전 그 사람을 썼어요. 그 사람을 만나는 동안 파브르 곤충기처럼 그 사람을 관찰한 것을 모두 써 내렸죠. 그 사람의 침묵을 암호 해독하듯 분석해서 알고리즘을 만들어 노트에 기록했어요.

당신 침묵 관찰기 1-1. 그가 내 울음에 답을 하지 않는 것은 난감함의 표현일까.

당신 침묵 관찰기 1-2. 그가 내 질문에 고개만 끄덕이는 것은 그의 동의일까, 포기일까.


가끔은 그가 벙어리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었어요. 어떻게 제가 독백을 몇십 줄을 뱉어내는데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지 싶을 때가 하루 이틀이 아니었어요. 연극을 해도 그렇게 긴 독백을 하면 상대 배우가 아니더라도 관객이 ‘와,’하고 감탄 정도는 할 것 같은데 그는 아무 말도 안 해요. 이건 연애가 아니라 마임을 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었어요. 속상한 마음을 참고 참다가 넘쳐서 마음이 한 줄이라도 입에서 나오면서 멈출 수가 없어요. 터진 물풍선처럼 돌이킬 수가 없어요. 그날 밤도 그랬어요. 속상한 마음을 긴긴 독백처럼 울먹이며 쏟아내는 내가 있었는데요. 갑자기 그 사람은 마사지사가 됐어요. 이렇게 속상함을 말하고 있는데 엄지와 검지 사이에 움푹 들어간, 체할 때 만져주는 부위를 조물거리기만 했어요. 다음날 그 부위의 명칭을 찾았어요. 합곡혈이라는 곳이었어요. 그냥 전 혈압만 더 올라간 것 같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니 문제집이 조금씩 풀리기는 했어요. 뭐든 공부하면 알게 되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책을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책도 편한 마음으로 읽는 책이 있고요, 큰마음을 먹고 천천히 읽어야 이해되는 책이 있어요. 그 사람은 후자예요. 그 사람은 아주 읽기가 곤혹스러운 책이었어요. 단순한 내용 같은데 어려워요. 기호학인가 싶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쉬운 것 같은데 이해하자니 너무 어려웠어요. 근데 설명도 불친절해요. 헤어지는 날 제가 말했어요. 당신을 잘 읽어가고 싶었어요. 라고요.

그 사람이 그랬어요.

“이제 절 읽을 필요 없어요”


아마, 그 사람은 자신도 자신을 몰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대신 해석해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본인이 무리하는 것도 모르고 본인이 뭘 사랑하는지도 모르고 사는 그 사람이 조금은 생경하기를, 또 오롯이 당신답기를 바랐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은 그 사람 생각보다 저를 아주 많이 사랑했는데 잘 몰랐어요. 어려운 문제에 봉착하면 다음 문제나 풀고 싶은 것이 사람의 본능인가 봐요. 다시 들여다보고 잘 참으면 해결할 수 있었는데 그 사람은 다음 문제나 푸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어요. 하지만 애쓰지 않으면 무슨 일이든 다음 반으로 넘어갈 수 없죠. 아마 그 사람은 영원히 사랑 초급반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등생은 끈기가 있거든요. 공부를 잘하려면 재능도 필요하지만, 끈기가 뒷받침되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타고난 것으로는 5등 정도만 하는 거죠. 1등이 되려면 근성이 아주 많이 뒷받침되어야 한답니다. 다행히 저는 조금 근성 있는 것 같아요. 마음먹은 것은 주로 해결해 내죠. 그래서 그와 헤어지고 노트 한 권을 다 썼어요. 저는 그를 만나는 동안 시료에 대한 정보를 방대하게 얻어뒀거든요. 아주 많이 수집했어요. 그래서 그가 없어도 전 그를 공부할 수 있어요. 그에 대한 논문을 내도 학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을 것만 같아요. 그는 없지만 전 그를 통해 사랑을 기술해요. 이 모든 기록과 공부가 끝나면 전 사랑에 대한 박사 학위를 수여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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