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잘 놀아야 하죠. ‘잘’이 중요합니다

by 송유성

나는 요가를 해요. 요가는 운동한다고 하지 않아요. ‘수련 ’한다고 해요. 서른이 훌쩍 넘어 처음 시작한 요가는 제 마음에 쏙 들어왔어요. 새벽 요가를 가는데요, 5분간 명상을 하고 수련을 시작해요. 요가 선생님이 어스름한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에 늘 명상으로 요가를 시작할 때마다 말씀하세요.

“우리는 오늘도 새벽을 정복했습니다.”

나는 그 말이 좋았어요. 작년의 저는 아무것도 이겨내지 못한 채 패배, 패배만 하고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세상에, 새벽씩이나 정복하다니요.

그렇게 전 요기니가 된 것 같아요.


저는 일기를 써요. 매일은 아니지만 꾸준히 적은 일기장이 10권쯤 있어요. 작년의 일기는 수련의 일지였던 것 같아요. 그 사람을, 그 사람에게 가는 길을 수련했어요. 짝사랑하는 방법을 수련한 거라고 볼 수도 있겠어요.

요가를 시작하고 3개월 만이었지요. 저는 절대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르사아사나(머리 서기)를 성공한 날을 잊지 못해요. 그즈음에도 저는 그 사람 옆에서 마음이 지옥이었어요. 마음은 넘쳐서 팝콘처럼 튀어 나가고 있는데 마음의 뚜껑은 잃어버린 지 오래라 닫으려야 닫을 수 없었고 그는 터져나가는 나를 모르는 척했지요. 모르는 것과 모르는 척하는 것은 다른 일이잖아요. 의도가 들어가면 죄가 가중되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나는 그가 밉지 않았어요. 뜨거운 팝콘 손에 받아 들려다 데이면 어쩌나 두려워하는 마음을 나는 느낄 수가 있었거든요. 두려워하는 마음은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두려움은 생존본능과 관련이 있고,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는 당연한 것이니까요. 아무튼 머리 서기를 성공한 그날의 일기에 이렇게 적혀있었어요.

‘무엇이든 아무 의미 없는 일은 없는 걸까. 당신과의 관계도 그러한 걸까. 조급할수록 무너지는 아사나처럼 천천히, 심호흡하며 쌓아 올려야 하는 걸까.’ 라고요.


그러고는 다시 생각했습니다. 당신을 위해 애를 쓰는 사랑이 아닌 당신을 사랑하려는 내 모습을 사랑하기 위해 사랑을 하겠다고요. 아마도 그날을 기점으로 제 사랑의 형태가 조금 바뀐 것 같아요. 팝콘 먹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펑펑 넘치도록 만들고 혼자 버리지 않고 끝까지 먹어봐야지. 하고요.


그와 헤어지던 즈음을 생각해 봅니다. 사랑은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 각자 온전히 하나의 개인으로 곁에 있어 주는 것이라고 어디선가 들었는데, 제 호흡과 그 사람의 호흡이 무너졌던가 싶어요. 우리는 서로를 아주 많이 사랑했지만 다른 동작을 다른 호흡으로 해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각자의 호흡으로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었을 텐데요. 이제 제 곁에 그는 없어요. 하지만 삶을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수련의 과정 같기도 합니다. 당신을 수련해 온 길이 지금의 저를 조금, 아주 조금은 단단하게 만들어 준 것도 같거든요.

정진이 없진 않았어요. 아주 그이가 느슨해지는 찰나도 있었거든요. L교수님이 그러셨어요. “남자들은 가끔 그렇게 현실 때문에 가다가 말아. 그것만 넘어서면 되는 건데. 의외로 남자들이 겁이 더 많은 것 같아.” 라고요.


나는 당신이 내 세상에 넘어와 같이 고무줄놀이도 하고 쎄쎄쎄도 하던 때를 기억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가끔 해맑아지곤 했죠. 현실 속에서 아주 늙어버린 당신이 나랑 아홉 살이 되어서 놀곤 했던 순간이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저 해가 지는 것을 당신이 알아버렸고 고무줄을 놓쳤고 당신은 건강을 위해 식사를 잘 챙겨 먹는 편이고, 저녁 먹을 시간이어서 돌아간 것뿐이겠지만 나는 잠을 잘 자고 다시 내일도 나와 즐겁게 놀면서 살길 바랐던 것 같아요. 그게 삶을 잘 이어가는 방법이니까요. 사랑하는 사람과의 즐거운 내일의 놀이를 기약하기도 하는 그런 방법 말이에요.


우리는 부지런히 먹고 부지런히 일하고 또 부지런히 놀아야 해요. 어느 것도 소홀해선 사람답기가 어렵죠. 사람들은 근데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부지런히 놀아야 잘 먹고 잘살 수 있다는 것을요. ‘먹고 사는 것’만 하느라 노는 것을 자꾸 보류해요. 저는 잘 놀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웃고 떠들어야 사는 것도 소화가 잘 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은 다시 노는 것을 잊어버리고 살 것 같아요. 그래도 나는 내가 아는 모든 놀이를 가르쳐 줬답니다. 우리 잘 놀자, 열심히 놀자, 그리고 열심히 살아가자고요.

알까요. 내가 무엇을 하자고 한 건지. 그 사람에게 놀이는 끝나고 장면은 순간적 유흥으로 남아 잘 살아가자는 후렴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아마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아요. 노는 건 인간의 본능이니까요. 삶에서 인간을 인간답게 해주는 것은 그런 것들이니까요. 기본적인 본능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래도 조금은 다른 형태로 그가 살아갈 것임을 압니다. 무엇이든 없는 채로 사는 것과 있다가 없어지는 것 사이에는 큰 간극이 존재하는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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