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없어도 살긴 살더라고요.
헤어지는 날 제가 물었는데요. 저 없이 살 수 있냐고요.
그가 그러더라고요.
“살긴 살겠죠. 슬프지만 이겨내야죠.” 라고요.
제가 운동선수여서 그 사람이 코치를 해주는 줄 알았어요.
그는 드라마를 모르거든요. 작중의 때론 우연한 상황이 드라마적 요소로는 필연적이며 그것으로 인해 극적이고 아름다운 장면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만 밑줄 긋고 마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사랑은 줄거리와 주인공이 있는 우리만의 드라마잖아요. 하지만 드라마를 잘 보지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그여서 우리가 다음 회차로 나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이별하는 그 슬픈 순간에. “살긴 살겠죠.”라고 대답을 하나 싶었지만 사실 저는 그의 그런 대답들에 이미 단련되어 있어서 조금 웃겼던 것도 같아요. ‘마지막까지 지답네.’ 하면서요. 심지어 울고 있는 저의 눈가를 휴지로 닦아주다가 갑자기 제 눈썹 주변에 정리가 덜 된 눈썹 하나를 손톱으로 뽑지 뭐예요. 이별 중인 여자의 정리가 덜 된 눈썹 털을 뽑는 남자라니. 이런 남자 두 번 다시 만날 일은 없겠다 생각했어요. “뭐 하는 거예요.” 하고 손을 치웠는데 이별을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 모드에서 웃음이 터져 잠시 본분을 잊을 뻔했어요.
근데 원래 그가 그래요. 상황의 속까지 보는 사람이 아니어서. ‘우네. 눈물 닦아줘야지. 어, 근데 눈썹이 하나 자라있네. 뽑아야지.’ 그게 다였겠죠. 세상 슬픈 장면이었는데 갑자기 시트콤으로 만들어버려요. 사실 그를 만나는 동안에도 그런 것들이 웃기고 귀여워서 사랑했던 것 같기도 해요. 그 상황에서도 사랑스러운 모멘트를 생각하는 나도 지독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이 지독한 병을 치료하려면 어느 용한 병원을 가야 하나. 오래 걸릴 일이겠구나. 하고요.
아무튼 그가 저의 눈썹을 한 가닥 뽑아주면서 이별했어요. 그의 살긴 살겠죠. 라는 말에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요. 하며 그를 보내고 울던 날들이 한참이었는데, 근데 정말 살긴 살더라고요. 심지어 더 잘 살아요. 그를 만나는 내내 울었던 눈물을 생각해 보면 그만 울어도 될 것 같은데 그 눈물을 압축시켜서 그가 없는데도 한참을 더 울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밥도 먹고 친구도 만나고 살긴 살더라고요. 죽을 것 같던 것도 없어는 지더라고요. 여전히 그는 제 마음에 박힌 돌 같은데 그냥 그대로 박아두고 살기로 했어요. 제가 당신 없이 어떻게 살아요. 라고 말했을 때 그가 서로가 없었어도 잘 살아왔었는데요. 라고 했던 말은 오류에요. 서로가 생기고 난 뒤의 세상은 그 전의 세상과는 이미 다른 세상이거든요. 사랑을 하고 누군가의 세상을 내 세상에 심고 그래서 바뀌어 버린 내 세상은 또 다른 우주가 되어버리는 일이거든요. 저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른 방법으로 살기로 했어요. 이겨내지도 않고서요. 다른 색으로 물든, 나의 세상의 비옥한 흙에 붉은 맨드라미와 노란 다정과 연보라의 낭만을 틔우면서요. 아마 더 비옥해진 저의 땅에서 다음번의 사랑은 더 잘 키워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의 말대로 우리는 살긴 살아야 하고 또 살아가는 이상 사람은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하곤 하니까 나는 살긴 살되 더 아름다운 드라마를 여기서 쓰면서 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