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통 같은 엄마

by 송유성

그날은 삼 층 대합실에서 엄마를 만났다. 날이 많이 풀린 겨울의 어느 날이었지만 여전히 추웠다. 먼저 도착한 나는 건물 안에서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출발하기는 했는데 지하철이 늦게 와서(지하철이 늦게 올 수가 있나, 하고 생각했다) 조금 늦겠다는 엄마의 다급한 전화를 받고 건물 안을 서성이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자주 보지 않는다. 어떤 엄마는 딸을 몹시 사랑하지만, 자신은 사랑하지 못해서 자신이 잘 살지 못했던 인생을 딸에게 짐처럼 쥐여 주며 의도와는 다르게 오히려 그 무게로 비뚤어진 삶을 살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이십몇 년을 친절하고 십여 년을 애정과 미움을 함께 느끼며 알았다. 나는 혈육은 질기다는 말, 정말 뼈저리게 안다. 그리고 질기다 못해 오래되어 버리면 빳빳해지고 빳빳해지다가 칼처럼 찌를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 때 이혼하셔서 엄마 따로 아빠 따로 나 따로 이렇게 같은 부산에서도 각자 사는데, 사실 그 정도의 거리도 가끔은 가깝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심리적으로는 조금 더 멀어도 괜찮을 것 같은데. 하고서.


그날은 엄마가 자신의 남자 친구분인 L삼촌과 오랜만에 밥을 먹자며 불렀다. 김장 김치를 담갔고 네 몫까지 담갔다는 핑계로 만나자고 했고, 나는 엄마를 만나면 소진되는 에너지의 쿨타임이 조금 찬 것 같기도 해서 거의 반년 만에 엄마를 만나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감정적 동요를 하는 일이 평균보다 적은 나이기는 하지만, 엄마만 만나면 나는 동요하고 슬프고 화나고 안쓰럽고 짜증 나다가 그럼에도 불쌍하디불쌍한 엄마의 뒷모습을 보고 돌아오는 날에는 거의 일주일은 꼬박 앓아야 했기 때문에 엄마를 만나는 일은 나에게 큰마음을 먹어야 하는 일이다.


엄마가 도착하기 전에 L삼촌을 대합실에서 먼저 만났고, 우리는 어색한 인사를 하고는 이내 유일한 공동 관심사인 엄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말 예민하고 짜증이 많은 엄마를 몇 년째 수더분하게 돌봐주시는 L삼촌에 대해서는 언제나 존경한다. 삼촌은 술이나 담배는 일절 하지 않으시고 주말이면 교회를 가는 독실한 크리스천인데, 원래도 성품이 순한 편인 삼촌은 기강이 드센 엄마 앞이면 더 순해지다가 이내 흐물거려져서는 그냥 두부도 아니고 가끔 연두부가 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딸 된 입장으로서 참으로 송구스럽지만, 이기적인 나는 삼촌이 엄마 곁에 있기 때문에 내가 조금 자유롭다는 것을 알아서 너무 많은 감사를 말하지 않는다. 사람은 자꾸 고맙습니다를 듣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다가도 이렇게 고마움을 들을 정도의 일을 내가 하고 있는 건가? 하고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삼촌이 나는 어떤 덫에 갇힌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하다가 줄행랑칠 수도 있으니까. 삼촌이 도망치면 내가 곤란하니까 두 분의 사랑에 감동하는 정도에 그치는 표현만 한다.

“엄마가 늦네요, 삼촌”

“그러네, 너희 엄마 출발했다던데, 아까.”


그러고는 정적. 정적이 무서워질 때쯤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나는 엄마에게 어디냐고 물었는데 엄마는 도착했는데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다짜고짜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나는 늘 차분하고 온화하게 사람을 한 걸음 뒤에서 바라봅시다, 하고 쓰면서 엄마의 조그만 짜증은 한 걸음 뒤는 무슨, 한 열 걸음 앞으로 가서 더 화를 내고 만다.


“엄마, 밑으로 오라니까? 한 층 내려오면 있다고.”


짜증이 섞인 대화를 듣던 삼촌이 자기가 데리고 오겠다며 허겁지겁 계단으로 올라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저렇게 말을 다 들어주면 안 될 텐데.’하고 생각했다. 엄마는 굉장히 영리한 편이라 자기가 누울 자리가 어딘지 안다. 아는 만큼 사람을 잘 착취한다. 아주 오랫동안 엄마는 따개비처럼 나에게 붙어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엄마와 삼촌이 내왔다. 엄마가 참 곱게 화장을 했다는 것을 멀리서도 알 수 있었다. 반년 전에 봤을 때는 고관절 수술 직후여서 지팡이를 짚고 다닐 만큼 거동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꽤 잘 걷는구나. 싶었다. 나는 언제나 나는 나쁜 딸이라고 생각하는데, 엄마가 건강을 회복할 때마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엄마, 오늘 예쁘게 하고 오셨네. 입술도 빨갛게 바르시고.”

“그럼, 우리 딸 오랜만에 만난다고 신경 좀 썼지.”


엄마와 나는 팔짱을 끼고 삼촌이 앞장서는 고깃집으로 갔다. 고깃집은 1층에서 고기를 골라 2층에서 먹는 식육식당이었고 질 좋은 소고기들이 비싼 가격으로 측정되어 있었다. 내가 살 테니 고르라고 하니 엄마는 어찌 그러냐며 자꾸 돼지고기만 집었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답답한 내가 몇 개의 고기를 넉넉히 골라 계산해 버렸다. 엄마는 내심 자신의 남자 친구 앞에서 척척 계산하는 딸의 모습에 기가 사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렇게 셋이 조금은 어색한 공기 속에서 식사를 마쳤고, 엄마는 삼촌의 옆구리를 쿡쿡 찌르더니 집에 가서 먹게 상추 좀 가져와 보이소. 라며 샐러드 바를 가르켰다. 제발, 그런 짓 좀 하지 말라고 예전 같았으면 기함했을 텐데, 자주 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나는 묵언하는 것으로 끼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비쳤다. 부모님은 예전과 다르게 내 눈치를 많이 보신다. 몇 년 전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게 이사를 하고 휴대폰 수신을 모두 차단했던 기간 이후에 조금 더 많이 보시는 것도 같다.


내가 없이 살아도 쪽팔린 짓, 구걸하는 듯한 짓을 싫어하는 것을 아는 엄마는 묻지도 않은 변명을 한다. “어차피 점심시간 지나서 시들면 식당도 버릴 거야. 엄마 저녁에 밥이랑 조금만 싸 먹으려고.” 하고서. 말도 안 되는 변명에 나는 더 마음이 불편하지만, 괜찮다는 말은 해주지 않는다. 그냥, 나는 점점 엄마를 달래어 주지 않게 되었다.


고깃집에서 나와서 각자의 목적지로 돌아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역으로 향하는데 육교 밑에 작은 화훼 단지가 있었고 나는 엄마의 눈이 문득 작은 꽃과 다육이에 머무는 것을 보았다.


“엄마, 살래? 사줄게.”

“아니, 엄마 집에 많아. 다 욕심이야.”

“그래도 얼마 안 하는데, 오랜만에 기분이잖아. 하나 골라봐.”


엄마는 손사래를 치며 됐다고 하면서도 내심 눈으로는 꽃을 고르고 있었다. 아유 됐다. 됐다. 엄마 가고 나면 처분하기 힘들다. 하면서도 그중 가장 예쁘게 핀 꽃을 만지작거렸고 나는 엄마의 ‘가짜 됐다’ 정도는 이제 알기 때문에 재빨리 사장님에게 얼마냐고 묻고는 계산을 마치고 엄마 손에 검은 봉지에 싼 화분을 쥐여 주었다. 팔천 원짜리 화분으로 딸 노릇을 했다는 얄팍한 합리화를 하면서.


엄마는 지하철에 갈 때까지 예쁘게 키운다며 꽃을 쓰다듬었다. 엄마가 이렇게 꽃을 좋아했던가. 한 번도 꽃을 키우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구나. 싶었고.

지하철역에서 삼촌이 들고 있던 엄마가 담근 김치통을 내게 건네주었다. 바로 일하러 가야 하니 조금만 달라고 전화로 말했던 내 의사와는 달리 김치통은 꽤 무거웠다. 엄마가 무거운데 괜찮겠냐고 몇 번이나 물어서, “아유, 이 정도는 운동한 깜냥이 있는데 들지!”하고서 씩씩하게 김치통을 들고 인사를 한 뒤 지하철을 탔다. 엄마가 지하철 문에 난 창문으로 내가 사라질 때까지 한참 손을 흔들며 나를 눈으로 좇았다. 엄마의 늙어서 처진 눈을 보면서 아, 이번에는 일주일이 넘게 앓겠구나. 싶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가게까지 김치통을 들고 가는데 너무 무거웠다. 온갖 양념을 갈아 넣어서 맛있다는 김치였지만 나는 김치를 좋아하지 않고 집에서 김치를 먹을 일도 잘 없다. 지하철에서 가게까지는 걸어가기엔 조금 먼 거리고 택시를 타기엔 너무 가까워서 나는 김치통을 이 팔로 들었다가 두 팔로 들었다가 하면서 겨우겨우 가게에 도착했는데, 김치통이 엄마의 마음 같다고 생각했다. 필요 없지만 고맙고 버리자니 아깝고. 조금만 주면 충분한데 넘쳐서 늘 곤란한. 하지만 엄마는 딸에게 김치를 준다고 성치 않은 몸으로 재료를 갈고 버무리고 했겠지.


다음날 먹어본 김치는 좀 짰다. 엄마는 음식을 아주 잘하는 사람이었는데 어느새 간도 못 맞추게 되었구나 싶었지만, 전화로는 너무 맛있더라며, 아주 라면에 척척 올려 먹으니 엄지척이 절로 나오더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 담가준다길래 괜찮다고 여러 번 말했긴 하지만, 엄마가 신나서 김치에 뭐뭐 넣었는지 자랑을 오래 하니까 됐다고 생각했다. 딸이 김치를 맛있게 먹었구나. 하고 며칠 기분 좋고 딸이 맛있는 고기를 사줬다고 며칠 자랑하고 다닐 엄마를 생각하면 김치통의 무게도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기도 한 날이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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