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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낳기로 결심한 역사에 대해서

by 송유성

과거의 멍 자국을 지우려 수많은 애인을 사랑한 일이 있지요

깐 달걀을 나눠 먹고 뜨거운 감자를 불어먹고

배를 타고 멸종된 파꽃의 한 종류를 찾아다녀 본 일이 있지요

누군가의 슬픔은 화석처럼 오래된 일이란 것을 모르고

온 세상의 생동만 바라본 적도 있지요

가만히 서 있다간 불이라도 붙을 것 같아서

온 세상의 신을 다 찾던 열렬한 사제가 되어버린 무신론자는

하늘만 보고 빌지요

등을 말고 말라가는 애인의 척추뼈 사이에 구원이 있는 줄도 모르고

훗날 미래에서 만난 과거의 내가 다시 환생한 애인을 사랑하고

멈췄던 시간이 흐르는 격정을 안고서

아. 슬픔의 소금 결정을 어깨에 얹고 오던 사람아

당신이 준 목숨아

엄동설한에 딸기를 구해줄게요

원한다면 나중에 자란 나도 당겨쓸게요

빚쟁이가 되어 독촉당해도 다 끌어다 줄게요

당신을 생각하면 똑똑한 일도 소용이 없고

계산을 잘하던 손은 온데간데 사라지지요

알고 싶은 것만 모르고 다 아는 것 같아요

누군가의 유년 시절을 상상하다 엄마가 되고 싶은 밤

나는 맑은 날의 우산을 펼쳐요


발목 끝에서 자란 그림자가 당신의 한숨에라도 닿기를 바라죠

아마 못 잊어서 좋을 마음이겠죠

예보 없이 맞은 소나기 같은 기도일 수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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