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랑 오사카를 간 적이 있어요. 여행을 떠나기에 낮에는 포근하고 아침저녁으로는 약간 쌀쌀한 이른 봄이었고 전 일본어에 능하죠. 제가 일본어로 말하는 모습을 보면 그가 저에게 백이십 번쯤 반할까봐 아주 음흉한 계획을 세우고 일본으로 갔어요.
우리는 부산에서처럼 일본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으로만 다녔어요. 둘 다 시끄러운 장소는 좋아하지 않고 번화가를 가더라도 사람이 드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곤 하면 어느새 인적이 드문 곳에 도착해 있고는 했지요. 그건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였답니다. 오사카에 가기 전에 ‘오사카 가 볼만한 곳’, ‘오사카 핫플레이스’, ‘오사카 명소’ 따위를 열심히 검색한 보람은 없었지만 그를 잘 들을 수 있으면 다 좋았지요. 그는 말수가 적고 조용히 말하죠. 사람이 많으면 제 귀는 커다래지고 다른 사람들의 소리가 마구 들려와서 그를 자꾸 놓쳐요. 그를 만나는 동안 저는 소머즈가 되어야 했어요. 그래야 아주 조금도 그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거든요.
일본에서의 저는 꽤 의기양양했어요. 부산에서의 그는 저에게 원하는 것이 없었죠. 사실 일본에서도 없었지만, 저는 일본어를 잘했고 그가 나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아도 나는 꽤 유용하다는 것을 끊임없이 어필할 좋은 기회였지요. 사실 요즘의 일본은 한국어 관광객이 많고 스마트폰이 있어서 별 어려움 없이 여행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야망 있는 사람이고 보란 듯이 능숙하게 주문하고 그가 묻지도 않는 글을 읽어주었죠. 제 어깨가 올라가다 못해 아마 백 미터 높이의 츠텐카쿠만큼 올라갔을 거예요. 일본의 저는 그의 보호자를 자처했고 보호자는 당신을 위해 존재하지요.
하루는 또 발길이 닿는 데로, 인적이 드문 곳으로 우리는 니폰바시역부터 덴가차야역까지 걷다가 관광객이 아무도 없는 동네의 작고 허름한 이자카야를 들어갔어요. 비가 조금씩 추적추적 왔던 밤이었지요. 아마 지하철역으로 다섯 정거장이 넘었을 것 같아요. 배는 고프고 비는 와서 추웠지만 그가 계속 걸어서 나도 걸었어요. 그는 잘 모르는데요, 사실 우리의 만남이 제 뜻대로 한 것이 대부분이라고 그는 생각하겠지만 난 당신의 뜻을 내 뜻인 척했어요. 그러면 고양이 같은 당신이 부담 없이 편하게 행동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그날 저는 사실 두 정거장쯤 걷고 그만 걷고 싶었답니다.
그곳은 좁고 오래된 가게였어요. 금연이 된 곳들도 많지만, 여전히 일본에서는 실내 흡연이 가능하지요. 가게는 사람들이 담배를 피워서 공기가 조금 탁했고 여덟 석 정도의 바(bar)석으로만 이루어져 있었고 뒤로 겨우 사람 한 명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만 있을 정도로 협소했어요. 그곳이 동네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사랑 받아온 장소라는 것은 오래된 식기와 그것보다 더 오래되어 보이는 마스터를 보고 알았어요. 마스터는 백발이었고 머리가 조금 벗겨져 있었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여든이 넘으셨다고 했어요. 지금 고백하건대 마스터가 웍을 돌리다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고 혼자 그가 요리하는 모습을 조마조마하면서 봤던 것 같아요.
그날 우리의 옆자리에 여성 두 분이 튀긴 면 위에 걸쭉한 소스를 올린 음식을 먹고 있었어요. 한국에서는 잘 보기 힘든 비주얼에 저는 궁금하기도 하고 사실은 나의 일본어 능력은 단순한 주문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 싶어서 그들에게 말을 붙여보았습니다. 그러다 유쾌하게 받아주던 그분과 함께 술을 먹게 되었어요. 오사카 사람들은 부산 사람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요, 음. 호탕하고 뭐든 알려주고 싶어 한다는 것이 비슷하다면 맞는 것 같았어요.
그들이 저에게 그 사람을 보며 카레시?(남자친구)냐고 물었어요. 저는 조용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는 그 사람을 당당히 소개했죠.
‘그는 말수가 적어요. 처음에는 오해도 했어요. 이 사람은 보통의 남자가 여자에게 선물하는 반짝거리는 것들을 선물하지 않아요. 우리 집에 놀러 오면요, 필요한 생필품을 체크해가요. 그리고 다음번에 올 때 필요한 생필품을 박스로 사와요. 혼자 사는 여자에게 너무 많다고 해도 그는 박스로 사와요. 대용량으로 과탄산소다 같은 것을 사 올 때면 평생 써도 남을 것 같은데 이건 함께 쓰자는 프로포즈인가 라는 생각도 들어요.’라고 그를 소개하며 나는 웃었죠.
제 말을 듣고 있던 마스터가 말했어요. 그가 ‘Japanese Style’이라고요. 일본 남자들이 표현 대신 행동으로 보여준다고요. 저는 한국인인 그가 재패니즈 스타일이어서 코리안 걸인 저와 자꾸 어긋나는 걸까 하고 생각해 봤어요. 하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그가 재패니즈건 코리안이건 유러피언이건 전 그를 좋아했을 것 같거든요. 그냥 그는 제 스타일이었어요.
우리는 일본을 다녀와서 얼마 안 있다가 헤어졌어요. 누가 그러던데요. 여행을 떠나보면 상대방을 내가 감당하면서 살 수 있는지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된다고요. 그는 제가 일본에서 아사히 생맥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감당하며 살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을까 싶기도 했지만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는 처음부터 저를 감당할 수 없다고 했으니까. 일본은 죄가 없는 걸로 결론 내렸어요. 일본에서 그와 저는 무척 즐거웠으니까요.
결국 서로가 가는 방향이 달라 우리는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 살기로 한 것 같아요. 난 그가 그답지 않던 스타일로 내 옆에 살았던 때를 아주 자세히 기억합니다. 사랑은 사람이 살면서 하지 않을 일들을 하게 만들죠. 서로의 스타일로 살아보는 것, 서로의 국적이 되는 일 말이에요.
그 사람이 한 때는 나의 국적이었겠지요. 그를 보내고 나는 돌아갈 수 없는 나라에 지독한 향수병을 앓았어요. 하지만 그곳에서 살았던 기억들이 오늘의 저를 살게 해요. 국적은 잃어도 당신을 사랑했던 따뜻한 주권은 여기,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