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년간의 고민 끝에서
영원의 존재 여부는 항상 내 핫 토픽 중 하나이다. 특히 '영원한 사랑이라는 게 있을까'에 대한 논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쉽게 결론짓기 어려운 답변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가 나에게 영원을 믿냐고 물어보면 난 언제나 영원을 믿는다고 대답했었다. 이십 대 초반엔 영원한 건 있다고 확신했었고 어느 정도 성숙해지고 나서는 의구심이 들면서도 영원에 대한 믿음을 잃고 싶지 않은 사람 중 하나였다.
많은 일들을 겪어오면서 내 생각도 많이 변했다. 영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원할 수는 있다. 그럼 영원이란 존재하는 거 아닐까? '할 수 있다'의 가능성이 존재 그 자체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영원이란 관심 있는 분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주제가 되어버렸다.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영원'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절대'라는 건 없다고 할 수 있겠다. 어떻게 보면 둘이 같은 뜻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영원은 좀 더 관념적인 표현이고 절대는 단언적이다. 영원은 길게 바라보는 기간의 느낌이고 절대는 시점적인 느낌이 강하다. 예를 들면, 어렸을 당시의 나는 아메리카노의 쓴맛이 어색해서 평생 아메리카노는 못 마시게 될 줄 알았다. 실제로 카페에 갈 때면 달달한 바닐라 라떼만 주문했었기에 매번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언니가 신기했었다. 이때 내가 했던 생각은 '난 절대 아메리카노는 안 마셔. 앞으로도 바닐라 라떼만 마실 거야.'였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지금의 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다. '절대'의 관점에서 볼 때 내가 아메리카노를 못 마실 거라는 건 이제 틀렸다는 걸 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바닐라 라떼를 이제 안 먹게 됐다는 건 아니다. 가끔 에너지가 필요하거나 당이 떨어질 땐 여전히 바닐라 라떼를 주문하고는 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영원'이다.
아메리카노를 못 마실 거라는 나의 '절대'는 어그러졌지만 바닐라 라떼는 그 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마시고 있다. 아직 영원을 살아보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의 삶이 내 삶의 전부라면 난 영원하게 바닐라 라떼를 좋아하고 있다는 거다.
앞으로도 영원의 유무에 대한 나의 의견은 겪고 있는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영원을 만들어갈 수는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절대는 없지만 영원은 가능하기에.
우선순위에 변동은 있더라도 꾸준함이 있다면 우리의 관계는 영원할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만들어진 사랑은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너와 나의 노력과 배려가 있다면 우리의 관계는 영원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