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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May 07. 2023

지옥같은 과거에서 탈출하는 법

'그랜 토리노' 속 고독한 인간의 자화상


 며칠 전, 브런치에서 댓글로 서로의 생각들을 공유하곤 하는 한 작가님의 영화 리뷰를 접했다.

'그랜 토리노'

이전 글에서 노인이 주인공인 영화를 보고 리뷰를 올리셨기에, 나와 다른 작가님이 한 번 보시라고 추천한 작품을 잊지 않고 보셨나 보다.

 

 괴팍한 주인공의 현재 성격이 그의 예사롭지 않은 과거 이력에서 기인함을, 그 당시 미국이라는 나라가 처해있는 시대적 배경과, 제목 '그랜 토리노'가 상징하는 의미등을 아주 섬세하게 풀어낸 멋진 리뷰였다.


 작가님의 리뷰를 접하자 난 몇 년 전 우연히 보게 된 그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실은 아무런 정보 없이 채널을 돌리다 OCN에서 무심코 얻어걸린 '그랜 토리노'를 보고, 마지막 장면에서 혼자 훌쩍인 그 아련한 감정이 떠올랐때문인 지도..


5월의 비 오는 어린이날 오후, 날씨를 탓하며 또 다른 실내 이벤트를 궁리해야 할 어린이들이 우리 집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관계로, 기어이  OTT프로그램에서 소액을 결제하고, 명화는 같이 봐야 한다며 남편을 억지로 옆에 앉힌 채, 그렇게 '그랜 토리노'를 다시 만났다.


 리뷰를 써 주신 작가님 덕분에 든든한 배경지식으로 무장한 나에게 이번엔 주인공 월트의 마음이 훅 들어왔다.

꼬장꼬장하고 까다롭기 그지없어,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자식들에게 조차 외면당하던 그는, 사실 그렇게라도 자신에게 벌을 주며 삶을 버텨야 했던, 평범하고 여린 한 인간에 다름 아니었다.

 자신의 과거이력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한국전 참전 당시, 개인적인 명분 없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상황아래, 과잉으로나마 조국에 대한 충성심으로 무장하지 않았다면, 그는 이내 쉽게 무너져 내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혐오하던 이웃 몽족 남매인 수와 타오에게 조금씩 끌리던 그의 마음이 활짝 열린 건, 우여곡절 끝에 방문한 그들의 파티에서 그의 마음을 간파당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이제껏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자신마저도 깨닫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번에 알아차린 그들 앞에서 월트의 마음은 비로소 무장해제 다.


 어느새 마음을 연 이웃 몽족의 타오와 그의 가족들을 괴롭히는 갱단에 대항하기 위해, 그는 마지막이 얼마 남지 않은 그의 몸을 희생하여 그들을 구하기로 결심한다.


 

 동행하려는 타오를 지하실에 가두며, 그는 마침내 오랜 기간 가슴에 담고 자물쇠를 채워두었던, 신부에게 조차 고해성사로 풀어내지 못한 그의 진심을 타오에게 털어놓으며 절규한다.

 아비규환의 전쟁터에서 국가의 명령이 아닌,  자신의 선택에 의해 저질러졌던 많은 살상들이 그에게 얼마나 큰 짐으로 지워졌는지.. 이제 겨우 인생을 시작하려는 젊은 타오에게 그가 한평생 지고 왔던 그 무거운 짐을 지울 수는 없었다. 그것이 얼마나 인생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자신이 몸소 체험했기에...


월트는 이제 살아남기 위해 상대방을 죽여야 했던 과거에서 벗어나 타인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 놓는다. 이 또한 온전히 자신의 선택으로...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는 상황에 이끌린,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면 현재는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 따른 선택이라는 것.


 타오와 수에 대한 월트의 마음은 다름 아닌, 자신의 과거에 갇힌 채, 전혀 소통의 방법을 몰랐던 가족에 대한, 자식에 대한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서로에 대한 관심과 공감은 의외로 긴 시간, 두텁게 얼어붙은 월트의 마음을 순식간에 녹여버리고 그 속에 꽁꽁 감춰뒀던 사랑을 밖으로 끄집어내었다.


어쩌면 우린 저마다 조금씩은  시대나 상황의 피해자며 동시에 가해자일 지도 모른다.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그를  먼저 탓하기에 앞서, 그의 과거까지 살피고 공감해 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먼 길을 돌아 결국 평범한 진리에 닿은 나에게 문득 어디선가 읽었던 한 구절의 시가 떠올랐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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