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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an 18. 2023

'플랜더스의 개'에서 넬로의 꿈이 화가인 이유...

'플랑드르'의 미술사

 

 우리 집 근처엔 내가 자주 만보 걷기 코스로 이용하는 하천길이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창원천을 끼고 길게 이어진 길 양옆으로는 메타세쿼이아와 은행나무, 벚나무와 그 외 미처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종류의 수목들이 즐비해 있어  이 길을 산책하고 있노라면 마치 유럽의 어느 아름다운 숲길을 걷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이따금씩 이 길을 걸을 때마다 어린 시절 감동적으로 보았던 넬로와 파트라슈의 '랜더스의 개'라는 만화영화를 떠올리곤 한다.

로가 할아버지, 파트라슈와 함께 우유통이 한가득 실린 마차를 끌고 시장으로 우유를 팔러 가던 길, 그 길이 연상되어 잠시 동심에 젖기도 다.


 언제가 TV에서 애니메이션 OTT 무료쿠폰이 날아와 목록을 이리저리 둘러보던 중 유난히 낯익은 캐릭터가 눈에 띄었다. 시리즈로 봤던 로 이야기가 80분짜리 애니메이션 영화버전으로 올라와 있었다. 옛 감성을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호기심으로 리모컨의 선택 버튼을 눌렀다.


 많은 부분이 축약, 생략되었지만 할아버지나, 로가 죽는 장면에선 이미 알고 있는 스토리임에도 불구하고 영락없이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 세월 동안 주워들은 풍월 덕분인지 어릴 때 스토리위주로 봤던 것과 달리 나이가 들어서 본 '플랜다스의 개'에선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주인공 로의 장래희망이 왜 화가였는지, 죽기 전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가의 실제 그림과 그 그림이 걸려있던 장소, 그 모든 것들이 당시 플랜더스, 흔히 프랑스 발음으로  '플랑드르'로 통용되는 그 지역과 뗄레야 뗄 수 없는 연관성이 있다는 걸 새롭게 깨닫게 된 것이다.


플랑드르지역


 지금은 벨기에 북부 지역을 지칭하는 말이지만 이전엔 벨기에와 네덜란드, 프랑스 일부까지 포함한 '플랑드르'지역은 바다보다 면이 낮은 저지대로 일찍부터 그곳 사람들은 늪과 같은 땅을 개간하며 척박한 삶을 개척해 나가야 했다.


 13~4세기, 지중해를 중심으로 아시아와 인도를 오가는 무역을 통해 쌓은 엄청난 부로, 상업과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명성을 이어받은 다음 주자가 바로 이곳 '플랑드르'였다.


 상업의 중심지가 이 곳으로 옮겨온 이유는 본격적인 대항해시대를 맞아 무역의 대상이 신대륙 아메리카와 아프리카로 확장되면서'플랑드르'지역이 그 요지에 위치했기 때문이었다. 이와 더불어 척박한 땅으로 농업을 할 수 없었던 그들은 가공업과 상업으로 눈을 돌림으로서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 지리적 약점을 영리한 반전으로 바꿔놓았다.


 '플랑드르'는 일찍이 값비싼 모직물 가공업이 성행했는데 영국에서 양털을 수입해 모직물을 만들어 유럽 전역에 수출함으로써 많은 이익을 남겼다.

플랑드르는 한 때, 양털 수입국인 영국과 그 당시 지배권을 행사하던 프랑스 사이에 여러 가지 정치문제와 이권 다툼이 벌어지면서 그 유명한 백년전쟁의 빌미를 제공한 곳이기도 하다.

얀 반 에이크 <아르놀피니의 결혼식>

 

 돈이 모이는 곳에 예술 또한 행하는 법, 15세기 벨기에의 브뤼헤에서 시작된 플랑드르 예술의 전성기는 몇 세기동안 안트베르펜과 네덜란드를 거쳐 다시 유럽을 넘나드는 이른바 '플랑드르학파'를 양산하며 절정을 이루었다.

13~4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에 뒤이어 자신들의 독특한 화풍을 발전시킨 플랑드르학파는 유화를 발전시킨 얀 반 에이크를 필두로 그 섬세함과 사실적 표현에 힘입어 미술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플란더스의 개'의 로는 이러한 배경을 지닌 곳에서 나고 자라며 화가라는 꿈을 키워왔고 로가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그림도  당시 플랑드르 미술의 중심지였던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 걸려있는 거장 루벤스의 작품이었다.


피테르 파울 루벤스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


 넬로가 크리스마스 전 날, 굶주림과 추위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마지막으로 감동과 위로를 받았던 그림은 플랑드르의 대표화가인 피테르 파울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라는 작품이었다.

 이 그림은 세 쪽자리 제대화로, 평소에는 양쪽의 날개 부분이 접혀있어서 그림을 볼 수 없었고, 따로 돈을 지불하거나 특별한 식을 앞둔 날만 펼쳐서 만인에게 공개하그런 귀한 작품이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넬로는 아마 그 사실을 알고 마지막으로 그 그림을 보고자 성당을 찾았을 것이다. 배경을 알고 나니  넬로의 간절하고 절박했던 마음이  더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대성당 앞 넬로와 파트랴슈의 기념조각


지금도 루벤스의 작품이 걸려있는 안트베르펜 성모 마리아 대성당 정문 앞에는 로와 파트라슈가 잠든 듯 마지막을 함께한 모습이 조각으로 새겨져 있다고 한다.

 

 플랑드르를 방문하고 예술에 감동을 받아 플랜더스의 개를 집필했다는 영국작가 위다, 미술에서 받은 영감을 문학으로

풀어낸 작가와 달리 문학에서 시작해 어느덧 미술의 거대한 흐름 앞에 선 나.


그러고 보면  미술이든 문학이든, 예술은 서로에 대한 상승 작용으로  마침내 우리를 그 중심으로 이끄는  아닐까? 예술의 위대함에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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