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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n 21. 2022

그렇게 가족이 되어간다.

나의 아킬레스건, 둘째 아들

 작년 6월, 둘째 녀석의 햄스트링이 파열되는 사고가 있었다.

고3을 앞둔 작년 1월, 배우가 되고 싶다는 선언을 하고 한창 연기학원을 다니고 있던 때였다.

고2 어느 날이었던가? 자신의 꿈을 부끄러운 듯 조심스럽게 피력하던 모습에  별생각 없이 장단을 맞춰준 게 화근이었다.

 "그래, 성적을 중상 정도만 맞춰 놓으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지 뭐."

 '자승자박'

던져놓은 미끼에 오히려 내가 물린 꼴이 되었다.

물론 조건으로 걸었던 성적을 잡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 세대의 트라우마인지, 꿈이라는 허상에 그만 마음이 약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얕은꾀를 부리던 나는 결국 아무런 소득도 없이 천덕꾸러기의 스폰서로 전락하고 말았다.


 '스트레칭을 어떻게 했길래...'

응급실에서 처치를 하고 반깁스를 한 채, 한 달여 동안 목발을 짚고 물리치료를 다녀야 했다.

그렇게 상처는 더디게 아물어 갔고...


 크게 기대는 안 했지만 내심 수시로 끝났으면 했던 대학 입시는 정시까지 이어졌고 서울, 경기를 10번 넘게 오가며 실기를 치르던 나날들이 올해 1월까지 지속되었다.

그리고...

2월의 불합격 통보를 끝으로 다사다난했던 1년이라는 세월을 마감했다.


 그리고 올해 3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도전하고 싶다며 서울행을 통보한 녀석...

2월 한 달 동안 서울의 여러 연기 학원과 원룸을  알아보느라 부산하더니 이번 주말에 함께 상경해서 마무리 짓자며 은근 압박을 가해 온다.


 어제는 둘째와 버스를 타고 집에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병원엘 다녀왔다.

입시가 끝나 오랜만에 친구들과 축구를 하다가 발에 걸려 넘어진 곳이 하필이면 이전에 다친 햄스트링 부위였다.

이후 물리치료를 몇 번 받았지만 이따금 통증이 느껴진다며 상경하기 전, 좀 더 정확한 원인을 찾고자 정형외과로 유명한 큰 병원을 찾은 것이다.


 1시간의 기다림 끝에 초음파를 하고 다시 1시간을 보낸 후 결과를 들었다.

근육이 많이 약해진 상태라고...

당분간 무리하지 말고 근력 키우는 운동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다며 의사는 불치병(?)을 선언했다.


  일주일 치 처방전을 써주며 도수치료를 하고 가라는 말을 듣고 수납을 먼저 했는데 초음파 8만 원, 도수치료 6만 원, 진료비까지 합쳐 거의 15만 원의 돈이 들었다.

MRI까지 찍을 각오로 오긴 했지만 아픈 사람을 상대로 너무 폭리를 취하는 건 아닌지 스멀스멀 분노 같은 것이 올라왔다.


 하지만 잠시였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

아들이 도수치료를 받는 동안 난 병원을 나와 주변 공원을 돌아다니며 생각을 정리했다.


 사실 올 3월은 우리 부부에게도 중요한 변화의 시기였다.

2년 전 사업을 접은 이후 찔끔찔끔 있던 일감도 2월에 과감히 정리해 버렸고 남편도 자진 퇴사를 앞두고 있는 시기였다.

일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진했다고 판단해 스스로에게 안식년을 주기로 오래전부터 계획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인생이란 언제나 그렇듯이 예측 불가능한 것.

자식 리스크라는 복병을 만난 것이다.


 근데 참 이상한 일이다.

지금까지 일을 하면서 유독 돈에 엄격했고, 심지어  돈을 밝힌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깐깐한 나였는데...

경제적으로 환산되지 않은 일은 무의미한 일로 치부하고 극도로 혐오하기까지 했던 나인데...


 지금 거의 반 백수인 상태로 아들과 이렇게 소소하게나마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참 소중하고 좋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돈을 쓰면서까지..

 이제껏 일에 바빠 미처 챙기지 못한 마음을 돈으로 때우는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해 서로의 미묘한 감정들을 공유하고 있다는 이 느낌이 너무 포근하고 따뜻했다.


 하지만 이 또한 경제적인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안다.

어디까지나 우린 자본주의 하에 사니까.

오랫동안 계획했기에 우리가 벌여놓은 일은 진행하되 예산은 다시 수정해야 할 것 같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앞뒤로 앉은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버스가 집 근처로 접어들자 뒤에 앉아있던 아들 녀석이 내 어깨를 툭툭 치더니 한 건물을 가리키며 말을 건넨다.

"아~저기..."

 그 장소와 얽힌, 우리가 함께한 작은 추억을 들추어내며 잠시 짧은 웃음을 나누었다.

평소 말이 없는 녀석의 웃음기에서 묻어나는 미안함의 냄새는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3월 들어 완연한 봄 날씨다.

차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참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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