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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n 29. 2022

화분에 물을 주며

자식에게 부모란...


  퇴사 이후 남편과 간간이 콧바람을 쐬면서도 틈이 나는 대로 집안을 갈아엎는 중이었다.

입주할 땐 새 아파트였지만 그동안 둘 다 돈 번다는 유세로 15년 이상을 방치하고 보니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품은 집은 우리의 무관심까지 더해져  손볼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늦어야 이미 엇나가버린 자식을 앞에 둔 부모처럼 이것저것 되돌릴 궁리에 머리가 아파진 우리는 일단 필요 없는 것은 버리고 청소부터 하기로 했다.


 남편이 앞 베란다에서 세탁실 선반장에 눌어붙은 곰팡이를 제거하는 동안 이것저것 주변을 정리하던 나는 이미 잎이 바랜 채 베란다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화분을 버리려다가 순간 멈칫했다.

시든 도드라져 보여서 그렇지 서너 개의 줄기 중 반이상이 살아있었그 열악한 환경에서 제법  봉오리까지 올라와 있는 도 눈에 띄었다.



2년 전이었나? 큰아들이 군대를 전역하면서 가져온 화분이었다.

타지에서 대학 1년을 보낸 큰아들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한계를  한 번 극복해보고 싶다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남긴 채 애써  말리던  나의 손을 뿌리치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러고 코로나와 어중간한 시기 때문에 단기하사로 6개월을 더 버틴 후 전역해 3월에 바로 대학 생활로 복귀했다.

그때 6개월의 하사 기간 동안 사용했던  살림살이들과 기타 짐들 택배로 거의 다 붙여왔고, 군용 가방과 함께 비닐백담겨 아들편에 딸려온 것이 바로 요 녀석이었다.

그러고 보면 수원에서 창원까지 제법 먼 거리를 여행한 녀석이었다.


 나는 반갑게 아들을 맞으며  제법 무거웠을 화분을 내심 마뜩잖게 여겼다.

거리 여행에 웬 화분? 사실 부대원들의 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그네들의 선물 고르는 어설픈 센스에 설핏 코웃음을 쳤더랬다.


 그리고 며칠 후 아들은 대학 복학을 위해 자취방이 있는 진주로 내려갔다. 나에게 선물이라며 화분을 슬며시 넘긴 채.

물을 한 두어 번 주었나? 그러고 나서 화분은 나의 관심사에서 잊힌 채 2년 동안  방치되었다가, 이제야 필요 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버려질 처지에 놓인 것이었다.



 누렇게 시든 이파리를 제거하니 찔끔 올라와 있는 새싹도 몇 개 눈에 띄었고,  아직 녹색빛이 살아  있는 뿌리를 가진 것도 있어 고사된 부분만 잘라내고 물을 흠뻑 뿌려주었다.

2년 동안 가림막 하나 없는 베란다에서 여과 없이 들이치는 햇빛을 온몸으로 받아내느라 얼마나 목이 을까?

새삼 미안한 마음과 함께 그 놀라운 생명력에 왠지 가슴이 뭉클해졌다.


  일주일 후 빨래를 다가 눈이 마주친 화분에 다시 한번 물을 주었다. 문득 타지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꿈에 닿으려 애쓰고 있는 아들들이 생각났다.

평소에 연락이 뜸한 녀석들...

녀석들도 이 화분처럼 그 어딘가에서 끈질기게 버텨줬으면..


부모란 그저 자식들에게 가끔씩 물을 주는 존재면 족하지 않을까 싶었다.

자식들이 목말라할 때, 지치지 말라고, 시들지 말라고, 다시 살아갈 수 있는 한 모금의 물을 주는 존재...

살아가다가 혹 부모가  녹록지 않아 물주는 걸 한동안 멈춘다 해도 시들지 않고 잘 견뎌줬으면...


오늘은  큰아들에게 톡으로 자랑질을 좀 해야겠다.

다 죽어가는 화분을 엄마살려놨다고...

그러니 너도 잘 견디라고... 언젠가 너의 힘으로  설 때까지...

부모가 아닌 사회 전체가 너에게 물을 주는 그날까지  버티라고...

과장 섞인 너스레를 좀 떨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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