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고원의 한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에 불과했던 페르시아는 세계적으로 걸출한 왕 키루스 2세(BC559~BC229)와 캄비세스 2세(BC 502~BC 522)를 거치면서 대제국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후, 다리우스 1세(BC521~BC486)와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 1세(BC486~BC466)의 통치기에 그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 페르시아는,서쪽으로는 에게해와 이집트, 동쪽으로는 인더스강에 이르는광대한 영토를 차지하며제국의 면모를 확고히 다졌다.
다리우스 1세 때의 영토
BC550년, 키루스 2세 재위 시절,페르시아가 당시 강대국이었던 메디아를 공격하며 신흥 강대국으로 우뚝 섰고, 이에 맞선동맹국들중 리디아를 먼저 쳐서 수도인 사르디스를함락시켰다,
이로 인해 페르시아는 당시 리디아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소아시아 연안(이오니아 지방)의 많은 그리스계 식민도시들 까지수중에 넣게 된다.(BC545)
리디아 영토
소아시아를 평정한 페르시아는이오니아 지방의 독립적인 도시 국가들을 다스리기 위해 이 지역에 참주를 보내는데, 이 것은 대제국을 건설한 이래로 자신들의 식민국가들을 통치해 왔던 방법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BC 499년,파견된 참주들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불만과 인근 밀레투스 참주, 아리스타고라스의선동하에 이오니아에서페르시아에 대항한반란이 일어난다.
BC498년, 그리스의 아테나와 에레트리아의 도움을 확보한 이오니아 반란군은 그리스 군대와 함께 페르시아의 지역 수도인 사르디스를 점령하고 불태워 버린다.
이오니아- 페르시아 전쟁 상황도
페르시아의 다리우스왕은 BC499~BC493까지 꽤 오랜 기간 이오니아의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게되고, 마침내 반란을 평정하며이오니아의 지배권을 되찾게 되지만 다리우스왕의 생각엔 이게 끝이 아니었다.
다리우스왕은 반란을 도운 그리스의 아테네와 에레트리아를 징벌할 결심을 하게 되고,더 나아가 이참에 자신의 제국 안에서 더 이상 반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근본을 제거함과 동시에,수많은 도시국가로 이루어진 그리스가 향후 페르시아 대제국에 끼칠 영향력을 고려해 그리스 전체를 완전히 정복해야겠다는 야심을 품게 된다.
이오니아의 반란은 그리스와 페르시아제국 사이에 일어난
최초의 분쟁이자 그리스- 페르시아 전쟁(일명 페르시아 전쟁)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오니아의 입장에서도 큰 대가를 치르긴 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는 무모한 전쟁만은 아니었다.
페르시아 또한 이 지역을 참주를 통해 통치히는 건 주민들의 큰 반발을 살뿐이라는 것을 인정하며 이오니아 지방은 참주정에서 민주정으로 옮겨가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BC 492년, 마침내 제1차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의 서막이 열리게 된다.
누가 봐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승패가 불을 보듯 뻔한 대결이었지만 모두의 예상, 그리스 자신도 감히 상상할 수 없었던 예상을 깨고 그리스가 당당히 승리함으로써, 그동안 '듣보잡' 국가였던 아테네를 새로운 세계의 강자로 부상하게 만든 그 역사적인 무대 속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