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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행복을 권하는 사회

자본주의 사화에서의 행복에 대한 담론

by 정현미


'행복'이란 내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어떤 시선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행, 불행이 좌우된다고 믿었다.

고통이 없는 상태를 행복이라 생각해서 늘 마음을 다스렸고, 그렇게 해서 어느 정도 마음의 평화를 얻었으며, 삶이 덜 힘겨워진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심리학자 김태형은 서슬 퍼런 독설로 이러한 행복을 '가짜 행복'이라 칭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있는 현 주류 심리학의 '행복론'이 점점 극단으로 치닫는 자본주의 체제에 일조하는 '가짜 행복론'을 양산한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몸담고 있는 현 자본주의 체제는 소위 공정한 잣대로 여겨지는 개인의 '능력'여하에 따라 모든 것을 무제한적으로 독점할 수 있는 '신자유주의'를 허용함으로써 자원 분배의 극단화를 심화시켰다.

급기야 이렇게 쌓인 부가 계급화되면서 여러 계층으로 세분화되고, 현 사회가 소위 위의 계층이 아래 계층에게 갑질을 일삼는 다층화 사회로 전이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로 인한 부의 양극화와 물질만능주의의 심화로, 개인은 돈이 없으면 생존조차 보장받을 수 없는 '생존 불안'과, 멸시와 냉대에 무제한 노출된 '존중 불안'을 안고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사회 곳곳에 잠재해 있는 이런 불안한 요소들이 계층 간의 반목과 적대감, 사회에 대한 불신을 가속화시켜 개인들을 점점 극단으로 치닫게 하는데, 이는 우리 사회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꼴에 다름 아니다.


또한 현 주류 심리학은 이러한 불행의 원인들을 개개인의 내면 문제로 돌리고 있다. 외부의 환경은 변화시키기 어려우니 이를 인식한 개인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마음 수양을 함으로써 긍정적인 시선으로 상황을 바라보라고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극단으로 치닫는 개인의 불만들이 사회체제로 향할까 노심초사하던 국가나 체제 입장에선 심리학의 이런 기조가 내심 반가울 터, 오히려 한술 더 떠 이에 편승하여 행복을 산업화하는 기지까지 발휘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자는 주류 심리학과 사회체제가 행복을 순간적인 쾌감으로 둔갑시켜 놓은 '소확행'이니 '욜로'니 하는 사탕발림에 현혹되지 말라고 조언하기도 한다.

나 또한 주류 심리학자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모범생을 자처하며 도를 닦듯 마음을 다스리고, 타인에게 그 노하우를 설파까지 하고 있는 처지였다.



이 책을 읽고 있자니 한편으론 큰 깨달음을 얻은 반면 혼란스러운 마음 또한 없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행복'이란 무엇이고 또 개인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동안 마음 수양으로 다소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던 나는 모든 것이 다시 원점으로 리셋되는 당황스러운 감정과 함께 과연 해결책은 있을까 하는 무력감이 몰려왔다.


저자는 모든 사람이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궁극적인 방법은, 외부 상황에 대해 눈과 귀를 닫은 채 자신의 마음만 들여다보는 것이 아닌, 우리 사회 구조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서 사회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북유럽 국가들의 예를 들고 있었다.


생존을 개인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는 나라,

직업 간의 급여 차이가 많지 않아 자신의 소명대로, 돈을 벌기 위한 직장이 아닌,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나라.

모두의 행복을 위해 쓰일 걸 알기에, 많은 세금도 기꺼이 수용하는 국민들로 이루어진 나라...


그러기에 그들은 인생의 최종 목표를 돈에 두지 않고 더 높은 가치에 두며 남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을 것이다.

피 터지게 노력해도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고 돈이 없다고 무시당하는 모멸감으로 잔뜩 날이 서있는 우리네 삶에 비하면...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주어진 행복을 누리기보다 참다운 행복을 위한 삶의 과정을 중시하라고 당부하면서 저자가 생각하고 있는 행복에 대한 담론을 피력하기도 했다.


사람은 자유와 창조적 활동으로 대변되는 인간 본성에 기반을 둔 욕망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인간적인 삶에 대한 목적을 실현시키기 위해 살아갈 때 참다운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결코 개인 차원만이 아닌 사회적인 차원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거듭 주장한다.


결국 돌고 돌아 사회 구조적인 문제로 귀결되었다.

어쩌면 결론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한 채 살아왔는지 모른다.

힘들이지 않고 쉽게 행복을 구하려고 자신을 기만하면서...


아~

처음 책을 접했을 때 허를 찔렸던 충격도 잠시, 그동안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나에게 김태형의 '가짜 행복을 권하는 사회'라는 이 책은 그동안 내가 견지했던 삶과 행복에 대한 관점을 완전히 재고하게 만든 책이자 고요한 나의 마음에 돌을 던진 책이다.


그리고...

새로운 진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된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게 해 준 책이자, 애써 외면하고픈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고 에둘러 다그치는, 밉지만 읽게 되어 너무나 감사한 책이 아닐 수 없다.


당분간은 김태형 교수의 책에서 헤맬 것 같다.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양손에 파란색과 빨간색의 알약을 쥔 채...

진실에 대해 단호했던 영화 속 주인공과 달리 우유부단한 내가 어떤 약을 선택할 지에 관해서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다.

자본주의 체제하에 살아가는 내가 삶과 행복에 대해 무언가 해답의 실마리라도 발견할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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