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른 공부

진정한 공부, 어른 공부

by 정현미

어릴 때 난, 누구나 나이가 들면 자연스럽게 지혜가 쌓여 포용력이 넓은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가끔씩 소통 불능에, 아이들보다 못한 이기적인 어른들 또한 적지 않음에 놀라면서 그저 나이가 들어간다고, 하염없이 세월만 보낸다고 누구나 지혜로운 어른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 또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자식들이나 다른 이들에게 그렇게 비치는 건 아닌지 늘 조심하며 나름 인격 수양에 관심을 가지던 차에, 차분하게 읽어 내려가던 유튜버의 목소리를 통해서 이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저자는 구치소 종교위원으로 30년 동안 사형수를 상담해 온 노익장으로 지금은 암으로 고인이 되신 분이다.

사형수들을 교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통해 인생을 배웠다는 분.

담백하고 진솔한 글을 통해, 저자가 70 평생을 힘겹게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경험과 그로 인해 깨닫게 된 인생철학을 엿볼 수 있었다.

늘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배려를 잃지 않고, 특유의 솔직함과 호탕함으로, 힘든 상황을 오히려 역전시키기도 하는 저자의 달관된 듯한 삶의 태도에서 묘한 해학과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우린 모두 사형수들 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죽을 거라는 사실은 확실한데 그때를 정확히 알 수 없는 사형수들..

차이가 있다면

실제 사형수들은 죽기 전까지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오늘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살지만

우린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산다는 것.

극도로 불안해하고 절망하면서 하루하루 시들어가는 사형수들을 보면서 저자가 생각한 인생이란 무엇일까?


저자는, 우리들에게 닥친 모든 일들에 일희일비하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었다.

인생이란 유한한 가치 앞에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잘 나간다고 오만하지 말며 힘들다고 너무 징징거리지도 말고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되 항상 겸손하라고 엄중하게 꾸짖는 것 같았다.


언제 교도관들이 들이닥쳐서 우리를 사형 집행장으로 끌고 갈지 모르니 살아있는 지금, 인생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뭔지 취사선택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었다.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에 아웅다웅하며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저자는 때론 인생 선배로서 우리를 다독이기도 했다.

사랑하는 이들과 중요한 순간들을 나누며, 돈이나 명예가 아닌 자신을 충만하게 하는 일을 찾아서 묵묵히 자기 인생을 살아가라고.


나도 가끔 죽음을 생각한다.

그러고 나면 지금껏 내가 괴로워도 놓지 못하는 일들이

얼마나 작고 부질없는 일인지 깨닫게 되는 날이 있다.


그러고 보니 고대 로마에서도 죽음엔 관한 격언이 있었다.

전쟁에 승리 후 개선하는 장군의 행렬 끝에서 노예들로 하여금 외치게 했던 말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지금 의기양양해 있는 너희들 또한 결국엔 죽을 운명이니 오늘에 취해 오만하지 말고 겸손하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인들의 지혜는 놀랍도록 통찰력 있고 심오하다.


어른 공부,

연필을 놓은 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책의 제목처럼 그 어느 때보다 공부가 더 절실한 때인 것 같다.

나의 안녕과 사리사욕을 위한 억지 공부가 아닌,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기 위한 진짜 공부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