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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어느 유품 정리사가 전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

by 정현미


요 며칠 크고 작은 일들로 바빠서인지 책 읽을 시간을 많이 놓치고 있었다. 일들이 정리된 후에도 정작 바쁜 건 마음이었는지 겨우 집어 든 책에도 정신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좀 가벼운, 아니 좀 쉽게 읽히는 책을 찾다가 왠지 제목이 낯설지 않은, 어딘가 안면이 있는 것 같은 이 책에 손이 갔다.

사랑한 후에 남겨진 것들? 오래전 본 영화의 제목과 유사해서 그런 친밀감이 들었나?


'유품 정리사'

겉표지를 넘긴 순간 결코 흔하지 않은 저자의 직업을 보자마자 친숙하게 다가온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언제가 한참을 찾아서 보곤 했던 어느 강연 프로그램에서 유품 정리사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저자를 만났던 기억이 그제사 떠올랐다.

우리 주변의 작은 영웅들을 강사로 초대해 그들의 진솔한 얘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에서 작가의 독특한 이력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강연 내용 또한 감동적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쯤 되니 작가의 특이한 직업과 제목의 매치만으로도 그 책의 내용을 거의 파악했다는 생각이 들어 가볍게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오만임을 서문을 읽으면서부터 깨닫기 시작했다. 결코 쉽거나 가벼운 내용이 아니었다.


떠난 이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마지막 흔적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유품 정리사인 작가는 많은 죽음을 다루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안타까운 죽음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것을 알려야겠다는 일종의 의무감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나날이 발전하는 스마트 폰의 기능과 팬데믹 등으로 비대면이 일상화된 사회, 정작 다정한 얼굴 한 번, 진심을 담은 목소리 한 번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점점 고독과 외로움에 갇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점점 늘어가는 추세다.


저자는 현장에서 겪었던 사례 중 가슴 아픈 사연들을 조심스럽게 하나씩 하나씩 꺼내놓듯 얘기하는데 그를 안타깝게 하는 죽음의 대부분은 우리가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가족들과 연관된 것들이었다.

가깝다는 이유로, 사랑한다는 이유로 속내를 더 드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외면하거나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일삼다가 끝내 가해자, 때론 피해자 신세가 되어 쓸쓸하게 죽어간 사람들...


저자는 타인에게, 심지어 가까운 이들에게 조차 너무 당연한 듯 무심히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조용히 외치고 있었다.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온 다양한 죽음 속에는 언젠가 내가 맞닥뜨릴지도 모를 하루가, 나의 사랑하는 가족이 겪을지도 모를 오늘이, 지금 내 옆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죽음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 정말로 남는 것은 집도, 돈도, 명예도 아닌 누군가를 마음껏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 오직 그것 하나뿐이라고...


저자는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친 고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일보다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네 이웃의 삶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크거나 거창한 것이 아닌 가끔씩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관심을 표현하는 것처럼 아주 사소한 일들로 그네들의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가 쏟아내는 안타까운 사연 하나하나에 마음이 먹먹해진 나는 책을 덮은 후 생각나는 몇몇 지인들에게 오랜만에 전화를 걸었다.


날씨도 더운데 잘 지내나요? 우리 함 봐야죠?


그래, 보고 싶은 사람은 보고 사랑하는 사람에겐 사랑한다고 말하며 살아야지...

줄 게 많지 않은 나, 그들에게 사랑했던 기억만이라도 남겨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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