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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Sep 18. 2024

오지랖과 배려 사이...

드라마 '굿파트너' 속 오지랖과 현실의 오지랖


"여기서 변호사가 나서는 것이 맞을까?"


 "..."


 "계속 입증하고 싸워? 3심까지 가?"


 "그게 변호사의 일일까요? 당사자가 원하니까?"


 " 자리를 만들어? 그렇다고 변호사가 부부상담사는 아니잖아?"


 " 그러니까요, 오.. 지랖... 아닐까요?"




 요즘 내가 꽂힌 드라마를 보던 중이었다.

일에 있어서는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 잘 나가는 베테랑 변호사와, 변호 현실과 자신의 가치관 사이에서 갈등하는 신참내기 변호사의 케미가 돋보여 나도 모르게 방영시간 대를 기억해 뒀다가 일부러 챙겨보는 몇 안 되는 드라마 중 하나였다.


 종영을 1회 앞둔 이번 회차에서는, 우여곡절 끝에 독립한 선배 변호사와 대형로펌에서 자리를 잡아 나가고 있는 후배변호사가 같은 사건의 상대방 변호사로 만난다는 설정도 나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지만, 매 회 매 사건을 맡으면서 결이 완전히 다른 그들이 서로에게 물들어 가며 변호사로서 같은 고민을 공유하고 풀어가는 모습이  나도 모르게 웃음 짓게 만드는, 유쾌하면서도 가슴 한쪽이 따뜻해지는 그런 드라마였다.


 이번 에피소드에선 부부관계를 두고 감정이 격해진 커플이 서로 이혼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두 변호사는 사건을 풀어가면서 표면적인 성관계 이면에 배우자들이  각자 상대방에게 털어놓지 못한 보다 근본적인 이유들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과연 소송을 맡은 변호사들의 영역은 어디까지일까?

앞서 그들이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문득 나의 고민 또한 이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에 학원을 오픈하면서 의욕이 넘친 나머지 비정상적으로 들떠있는 감정에 취해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이전에 비해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학습 태도나  방법이  제대로 갖춰져 있 않은 것을 보고 난 꽤 충격을 받았다.

 아이에 따라 본인과의 상호작용만으로도 상태가 호전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간혹 가다가 아이들과의 교감만으로는 부족한 경우들이 발생하곤 다.

 

 그럴 경우 보통 어머니와 심도 깊은 상담을 나누지만, 때로는 아버님의 협조까지 구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아무래도 아이들에겐 아빠보다 엄마가 더 만만함으로 아이들 행동에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쪽 부모님, 즉 아버님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판단에서였다.


 이런 이유로 유난히 공부와 담을 쌓았거나 태도가 좋지 않은 아이들과는 본인뿐만 아니라 어머님, 더 나아가 버님의 연락처를 얻어 직접, 여러 번 통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심지어 부부 동반으로 학원을 내원해 주시길 부탁드리기도 했으며 실제로 그러한 경우들도 있었다.


 렇게 학원 개원 초반에는 회원 하나하나에 대해 여러 차례의 상담도 마다 하지  그것에 많은 열정과 시간을 투여했다.

아이의 전반적인 생활환경을 체크하지 않고는 학습 진행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었고, 열과 성의를 다해 집중했으며 이러한 나의 진심은 늘 통할 거라 생각했다.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일까?
결국은 나의 오지랖일 뿐이었나?


 부모님들은 나의 성의에는 공감해 주었지만 결국 단기적인 결과나 아이들 입장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윤색되어 전달되는 말들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대화가 단절된 가정, 서로 불신하는 가족 구성원들, 바쁘다는 핑계로 방임되는 아이들, 자신의 성에 차지 않으면 떼를 부리는 아이들, 조금도 집중하지 못하고 산만한 아이들...

 이런 아이들은 총체적인 생활환경이나 습관의 변화 없이는 학습이 힘든 상황이었고,  장기적인 변화의 과정을 함께하려면 누구보다 부모님들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감사해하며 적극적으로 호응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순수한 나의 의도와는 달리 한 번씩 관계가 틀어질 때면 내 마음의 동요 또한 꽤 깊어졌다.




요즘은 학교에서도 집에 전화 잘 안 해요.
각자 사정들이 다 있으니까요.
그냥 좀 지켜봐 주시면 안 됐나요?
굳이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에게 까지 전화하는 건 좀...


아버지와의 통화로 빈정이 상한 친구가 학원을 그만두자 제법 말귀가 통하는 중학생 회원이 나에게  핀잔주듯 말했다.


그래 그랬어야 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학원 빼먹기를 밥 먹듯 하고 오면 엎드려 있고, 화장실을 가면 함흥차사에, 기초는 잡혀있지 않고...

무엇보다 그렇지 않은 평범한 다른 회원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기다려준다는 명목이 결국 방치가 되고 그동안 다른 아이들의 학습권까지 침해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결국 내 오지랖의 주된 요인이었는 지도 모른다.


현실에서의 나의 참담함과 달리 오지랖일지언정 드라마에서의 그녀들의 결정은 인간적이고 멋져 보였다.


과연 어디까지가 나의 영역일까?

혹시 배려를 가장한 오지랖은 아닐까?


비록 흔들렸지만 결국엔 명쾌한 해결책으로 결말을 장식한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과 달리, 상담을 위해 전화기를 드는 순간, 나의 현실은 여전히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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