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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Jul 17. 2022

카르페 디엠

고단한 현실의 역설


카르페 디엠!


 한동안 다양한 연령층에서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유행했었고, 지금도 심심찮게 회자되는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언급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는데 그 출처를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 'odes'의 한 구절에서 찾을 수 있다.


.... <생략>


카르페 디엠!

너와 나, 우리가 몇 살까지 살 것인지

이것은 신들의 영역이니

함부로 궁금해하지 마라.


바빌로니아 점쟁이들의 점술판은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라.

미래도, 과거처럼

어깨 위에 지고 가는 것이 차라리 좋다.


주피터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겨울을 보도록 허락할지

아니면 티레네의 파도가

해변의 바위를 때리며 힘을 낭비하는

이번 추위가 우리의 마지막 겨울이 될지

알려하지 말아라.


그냥 와인을 줄이고

현명하게 살아라.

인생은 짧은데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우리가 이야기하는 바로 이 순간에도

질투 많은 시간은 새어나가고 있으니

오늘을 꽉 움켜잡고

내일은 아주 조금만 믿어라.


 호라티우스는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일어난 내전에서 로마 공화정을 지지하는 브루투스 파에 가담하게 된다.

결국 전쟁에 패하면서 모든 지위와 재산을 몰수당한 채 하급 관리로 지내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에서는 권력의 무상함과 함께 인생의 유한성을 깨달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초연한 모습이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공화정에서 왕정으로 회귀하는 격동의 시대를 함께 겪으며, 고단한 삶에 지친 로마 시민들에게 동시대인으로서 심심한 위로를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미래의 걱정은 접어두고 현실에 충실하며 삶의 소중함과 기쁨을 느끼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서...




 사실 카르페 디엠과 일맥상통하는 얘기는 호라티우스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2000년경에 쓰인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시'에서도 엿볼 수 있다.


 '길가메시'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 수메르의 도시, 우르의 전설적인 왕인 길가메시가 영생을 찾아 떠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파란만장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그 여정 중에 친구 엔키두를 잃고 방황하는 가운데 들르게 된 어느 주막의 주인이, 인생에 달관한 듯한 태도로 길가메시에게 말한다.


길가메시여,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나요?

당신이 찾고 있는 생명을 당신은 결코 찾지 못할 거예요.

신들이 인간을 창조했을 때, 그들은

죽음을 인간의 몫으로 나누어 주었고,

생명은 그들이 채어가 버렸기 때문에,


그대, 길가메시여, 당신의 배를 가득 채우세요.

밤과 낮으로 즐거운 일을 만들고,

매일 향연을 베푸세요.

밤이나 낮이나 춤과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세요.

깨끗한 옷을 입고,

이리 와 몸을 씻으세요.


당신의 손안에 품고 있는 아이를 보시고

당신의 아내가 당신 품 안에서 기뻐하게 하세요.

이러한 일들만이 인간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랍니다.

모든 살아있는 인간들은 죽기 위해 태어났고,

누구도 진정한 행복을 자랑할 수 없기에

침착한 마음을 가지고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견뎌내야 합니다.

지나치게 기뻐하지도 슬퍼하지도 마세요.

우리의 볼일을 벗어나는 일에 대해서,

순례자와 같이 우리는 정해진 곳을 간답니다.

세상은 하나의 여인숙이며 죽음은 여행의 끝입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도 끊임없는 전쟁과 여타의 어려운 여건으로 시대를 살아내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때의 사람들이 현재의 고단함을 극복하는 방법이 오히려 현실을 받아들이고 긍정하는 것이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긴, 위정자들이 저질러 놓은 과거의 일들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인생에서, 미래의 일까지 걱정한다는 건 오히려 사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떻게든 삶은 지속되어야 하므로 그들이 내린 해결책은 그야말로 역경을 뛰어넘은 달관의 경지가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시대를 훨씬 뛰어넘었다지만 근래의 우리네 삶도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다.

모두들 '카르페 디엠'에 열광한다는 건, 현실이 그리 녹록지만은 않다는 반증일 수도 있으니까.


소확행이다, 욜로다 저마다 나름의 해석으로 SNS를 통해 현재의 충만함을 인증하느라 정신이 없다.

마치 행복 경쟁이라도 하듯이,

미래에 대한 걱정 따윈 아예 발도 들여놓지 못하게 하겠다는 엄포와 함께.


근데 뭔가 빠진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카르페  디엠'에 이르기까지 뭔가 자기만의 사색과 철학은 빠지고 소비만 남은 것 같은 이 느낌.


현재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하는 혜안에서 나온 달관의 모습과 그것마저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시류에 휩쓸리는 모습과의 간극은 실로 어마어마하지만 우리네 범인들의 눈엔 그저 종이 한 장 차이에 그칠 뿐이다.


인생의 큰 화두 중 하나인 '카르페 디엠'

고민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고

이제부터라도 사색하려 한다.

그 진정한 의미를... 나만의 철학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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