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
올해로 자영업 3년 차, 2023년 9월에 시작했으니, 정확히 말하면 만 1년을 넘긴 셈이다.
연말과 연초엔 생업을 이어가는 일과 세금 문제가 더해져 더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학원은 부가가치세를 내지 않는 면세사업이지만 현금영수증 의무 발행업이라 연말엔 누락된 사항은 없는지 점검하고 2월 10일에 있을 사업자 현황신고에 대비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렸다.
10여 년 전만 해도, 회비 결제 건 중에서 현금비중이 꽤 높았는데, 요즈음은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패턴도 많이 변해서 거의 90% 이상이 신용카드나 제로페이로 결제를 한다. 그나마 현금을 계좌이체 하는 분들도 현금영수증을 꼭 당부하곤 한다.
하지만 정확히 드러나는 매출에 비해 매입은 적격증빙을 해야 겨우 공제를 받을까 말까 하니, 지출을 일일이 밝혀야 하는 일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리고, 올해는 무엇보다 사업을 시작한 2023년도에 발생한 소득에 근거해서 책정된 건강보험료와 연금이 고지되는 해이고, 소급적용될 경우, 몇 달치가 한꺼번에 청구되기도 해서, 그 어마어마한 금액에 기함을 토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기간이기도 하다.
사실 이번 해부터는 세무사에게 기장을 맡길 계획이었다. 하지만 작년 매출이 애매해서 복식기장 의무 범위에는 포함되지 않았고, 쓴 돈도 많아서 얼추 매출과 매입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는지 남편이 직접 해보겠다며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사업체가 내 명의로 되어있다 보니 온전히 남편에게만 맡기고 나 몰라라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때로는 주말에 카페에서, 평일엔 퇴근한 후 집에서, 꺼진 노트북을 다시 켜서 자료를 찾고 정리하는 나날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일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2월 초에 문자 하나를 받았다.
이번 달엔 군대문제로, 경기도에 있는 작은 아들이 자취하고 있는 원룸도 빼야 해서 그쪽 부동산과 계속 연락하는 과정에서 받은 문자였다. 처음엔 바빠서 흘깃 읽고는 아들 원룸이 팔렸나 했다. 그런데 다시 찬찬히 살펴보니 203호가 아닌 501호.... 우리 학원 호수였다.
아뿔싸! 우리가 지금 임차하고 있는 곳은 오랫동안 분양이 되지 않았기에, 그 건물을 보유하고 있던 시행회사와 직접 계약을 했었는데 그새 일반인에게 팔렸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세입자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갑자기 머리가 아파왔다. 작년에 임대인이 바뀌면서 월세를 20% 올렸다며 한탄하던 옆 학원 원장의 푸념이 생각났다.
10년도 넘게 비어있던 공실을 거금을 들여 인테리어를 하고 회원 제로에서 시작해 지금까지 고군분투한 나날들이 마치 어제 일인 양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문자의 발신지로 전화를 하니, 꽤 젊은 목소리의 새 임대인은 코로나로 낮춘 월세를 올려 받고 싶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같은 층에 건물 하나를 더 갖고 있다는 그는 자신이 월세를 낮게 책정한 바람에 주변의 건물주로부터 매번 핀잔을 듣는다며 난감한 자신의 처지를 토로했다. 장사가 안된다는 임차인의 뻔한 입장만큼이나 궁색한 변명이었다.
갑자기 받은 연락이라 각자의 입장을 정리한 후 차후 다시 연락하자며 전화를 끊었다. 온몸에 힘이 빠졌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그동안 걱정해 왔던 남편과 나의 건강보험과 연금 고지서 2달치가 몰아서 날아온 날이기도 했다.
최근 들어 가장 피곤한 날이었지만 나는 쉬 잠들지 못했다. 늦게까지 유튜브에서 임대차보호법을 검색하느라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알아본 바, 법적으로 따지면 걱정할 건 없었다.
임차인은 계약한 첫 해부터 10년간 영업할 권리를 법적으로 보호받으며, 임대료도 최대 5%를 넘길 수 없다는 시실이 명백했다. 일단 비빌 언덕을 마련하긴 했지만 현실의 문제는 법보다는 서로 간의 감정문제였다. 오랜 세월 불편한 관계로 엮인다는 게 영 마음이 편치 않았다.
승계하기로 했다는 첫 계약이 아직 완료된 것도 아닌데, 건물의 잔금을 치르자마자 월세 인상부터 독촉하는 세상인심이 참 야박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더 상했는 지도 모른다.
몇 년을 쉬다가 다시 시작한 자영업의 세계는 참으로 많이 달라져있었다. 어쩌면 이전에는 아예 세무사에게 맡기고 무관심했기에 무지했는 지도 모른다.
도시 외곽을 선택한 나의 책임도 있지만 10년 전보다 후퇴한 수강료를 받으며, 선생님 급여와 그에 못지않은 프랜차이즈 차지, 임대료, 관리비, 건강보험과 연금을 비롯한 각종 세금을 내고 나니 정작 내 손에 쥐어진 몫은 말 그대로 입에 풀칠할 정도다.
욕심을 버리고 반 봉사하는 정신으로 살자며 남편과 다짐하고 다시 시작한 일이지만, 감정노동이 심한 날엔 이 나이라도 마음의 동요를 쉬 잠재우지 못한다.
하지만 어쩌랴, 우리네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것을...
빤한 자기 위로인 줄 알지만, 우리보다 더 힘들게 삶을 이어가는 자영업자 분들이 너무 많다는 걸 알기에,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감사한 삶을 이어가려 한다.
빨리 나라가 안정되고 경제가 회복돼서 거리는 다시 활기를 찾고, 자영업자들의 시름도 잦아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