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시련을 대하는 자세
"원장님,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조그마한 학원을 운영하는 내게, 보통 이렇게 시작되는 선생님들의 면담신청은 영 달갑지가 않다. 불길한 예감은 이번에도 얄짤없이 적중했다. 이런 날엔 숱한 세월로 다져진 나의 동물적 감각이 원망스럽기 그지없다.
만 1년을 근무한 영어선생님이 그만두신다는 통보를 받고 난 반사적으로 인각적인 아쉬움을 토로하며, 의례 다음 수순인 이유를 물었다.
사실 사직의 고민을 마친 순간, 이미 정해진 마음을 비집고 들어가기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어쩌면 방황하는 내 마음을 납득시키기 위해 시간을 벌고 있었는 지도 모른다.
인구절벽을 향해가는 시대에, 딸만 셋을 둔 애국자(?) 선생님은 올해 아이들이 모두 상급학교에 입학하느라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친정어머니의 도움을 받고 있지만 제법 품이 많이 드는 시기인 만큼 아이들을 건사하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픈 마음을 같은 어미로서 어찌 공감하지 못하겠는가...
학원이 좀 안정되나 싶었더니, 어김없이 빈 틈을 비집고 모습을 드러낸 이 시련이란 녀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나의 고민이 깊어졌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수많은 시련을 겪기 마련이다.
생각해 보면, 나 또한 비빌 언덕 하나 없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힘겨운 20대와 정신없던 3,40대, 그리고 어느 정도 한숨 돌리기 시작한 50대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많은 시련과 마주하며 살아왔다.
'시련'이란 지극히 상대적인 개념이라 어떤 사람에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그저 지나가는 사소한 에피소드에 불과한 일들이, 누군가에겐 인생의 방향을 바꿔놓을 수도 있을 정도로 심각한 스트레스로 작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란 시련을 극복할수록 더 단단해지고 성장한다는 것이다.
사회물이 들지 않은 순수한 시절의 나는 사소한 장애물에도
쉽게 꺾이고 좌절했다. 이런 시련이 왜 하필 나에게만 유독 많이 오는지, 나의 환경과 운명을 탓하며 기나긴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운 날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는 조금씩 더 단단해지고 강해졌으며, 그렇게 억척 아줌마가 되어갔다.
어떻게 보면 혼탁한 물이 군데군데 섞인, 소위 사회물이 내 몸 구석구석을 채우기 시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10년이 훌쩍 지나 만난 대학동기들이, 제일 많이 달라진 나를 보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인 걸 봐서도, 좋든 싫든 숱한 시련들이 나를 참 많이도 애를 먹였구나 생각했었다.
사업이랍시고 학원을 운영하진 어언 20여 년, 무슨 일인가 시작한다는 건, 알 수 없는 숱한 시련들과 직면한다는 것,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을 쓴 상대방의 일방적인 결투신청을 오롯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일을 하면서 깨달았다.
하지만 시련이 폭풍처럼 나의 마음을 한바탕 휘젓고 사라지면서 반드시 긴 여운을 남긴다는 사실을 인지한 건 그로부터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였다.
그로 인한 생채기가 아물고 딱딱해지면서 그 밑에서 올라오는 보드라운 새살이 점점 단단해지는 것처럼 그렇게 어리버리한 원장도 조금씩 단련되어 갔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반복하면서 시련을 대하는 나의 태도 또한 조금씩 바뀌어갔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고민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예전처럼 원망이나 신세한탄으로 일관하던 모습이 아닌, 클레임이 걸려온 그 부분에 대해 점검하고 심사숙고하는 자세로 조금씩 변화를 꾀한 것이다.
시련이란, 안일하고 매너리즘에 빠진 나에게, 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는지, 그 부분을 다시 고민하고 개선하라고 미리 알려주는 신호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자 시련은 오히려 나의 편이 되었다. 아무리 친한 지인이라도 나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직언을 한다는 건 관계의 종말을 감수해야 하는 이 시대에, 시련이란 놈은 온 우주의 기운이 나를 염려해서 보내준 든든한 조력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지기 전에 얼른 살펴보고 개선하라는 일종의 암시 같은 것 말이다.
어쩌면 이러한 생각들은 그저 내 마음 편하자고 둘러대는 자기 합리화고, 일종의 망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바꾸자 시련을 대하는 나의 마음도 편해졌다.
그의 마음을 알았기에 불청객으로만 폄하했던 녀석을 제법 참을만한 내편으로 여기게 되었다. 그렇다고 버선발로 달려가 환영할 정도는 아닌, 여전히 고약한 녀석인 건 어쩔 수 없지만...
선생님의 통보를 듣자마자 일단 구인 광고를 냈다. 그리고 학원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50대 중반인 나에게 학원이 갖는 의미는 뭘까? 선생님의 비중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할까? 어떻게, 얼마나 운영할 수 있을까? 프랜차아즈 차지 또한 높아져 가고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은 없을까?
당분간 시련이 던져 준 숙제로 밤잠을 좀 설칠 것 같다.
하지만 미리 힘 빼지 말고, 그 선의를 헤아려 긍정적으로 임하려 한다.
시련이란 녀석, 결코 달갑지 만은 않은, 여전히 미운 녀석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