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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팝나무를 보고와서...

밀양, 위양지의 이팝나무

by 정현미


모처럼 연휴인 5월 초, 첫날은 그동안 미뤄두었던 집안청소를 하느라 분주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쓰고도 3일이 남다 보니 왠지 집에만 있기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궂은 날씨가 예보된 연휴 4일 중 비가 비껴간다는 둘째 날, 남편과 가까운 밀양에나 한 번 다녀오자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창원에서 1시간 남짓의 거리에 있는 밀양은 지난 2~3년 동안 몇 차례 방문했었던 곳이다. 생업을 잠시 접었던 시절, 여유가 없어 미처 찾지 못했던 인근 지역을 한참 돌아다녔는데, 그 리스트에 밀양이 있었더랬다.

그때, 아무런 사전 지식 없이, 한 여름에 찾았던 위양지를 둘러보며, 5월이면 이팝나무가 그렇게 이쁘다는 정보를 뒤늦게 듣고서야, 꼭 한 번 다시 오리라 다짐했던 기억이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위양지는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작은 저수지이다. 원래 이름은 '양양지'였는데 근래에 선량한 백성을 위해 축조되었다는 뜻의 '위양지'로 바뀌었다고 한다. 논에 물을 대는 용도로 사용된 이 작은 못은 인근에 가산저수지가 생기면서 그 기능을 잃었지만, 사시사철 변하는 아름다운 풍광에 뭇 관광객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고 한다.


특히 풍년을 기원하는 의미로 심은 이팝나무가 만개하는 5월에는 그 경치가 절정에 이른다고 하니, 나를 포함한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잡아끄는 매력을 지닌 곳이기도 하다.


이팝나무는 고봉에 쌀알을 뿌려놓은 이밥(쌀밥)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힘든 시절, 이밥에 소고기를 먹는 것이 모두가 꿈꾸는 풍요로운 세상이었음을 감안할 때,

저수지 둘레에 이 나무들을 심었을 때의 백성들의 마음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만하다.



이왕 가는 거, 맛집에 들러서 만난 것도 먹고 오자며 12시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1시 이후면 인원도 대충 빠져서 밥 먹는데 지장이 없겠지 싶었는데 너무 안일한 생각이었다.

예약이 필수라는 첫 번째 정식집은 아예 전화를 받지 않았고, 서둘러 검색한 다음 맛집은 목적지인 위양지와 꽤 먼 거리에 있었다. 도착하니, 주차장도 좁을뿐더러 문밖에서 대기하는 사람들이 10여 명 보였다. 저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 그들을 비집고 테이블링 예약을 하러 턴을 돌았는데 아뿔싸, 그곳엔 입구보다 몇 배나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흩어져서 자기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미 대기 순번도 마감이라는 안내문과 함께, 더 이상 예약도 받고 있지 않았다.


시간은 2시를 넘기고 있었다. 우린 다음 장소로 향하면서 혹시나 싶어 전화를 했다. 한참만에 연결된 통화에선 이미 재료가 소진되었다며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는다는 주인장의 통보가 무슨 선고처럼 절망적으로 들렸다.

우린 곧장 내비게이션의 목적지를 제4의 장소로 바꿨지만, 이쯤 되니, 거기라고 우리를 위한 자리가 있다는 보장이 없었다. 이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였나? 밀양을 만만하게 본 우리의 잘못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밀양을 방문했던 경험이 여유롭게 느껴졌던 건, 당시 실업자였던 우리들의 상황 때문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그땐 평일날의 방문이 아니었던가?


우린, 네 번째 맛집으로 가려던 생각을 접고, 근처 아무 곳이나 우릴 받아줄 자리가 있는 곳이면 괜찮다고 마음을 비웠다. 이미 배꼽시계가 울린 지 한참이 지났고, 슬슬 부아가 올라 서로의 말 한마디에 예민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가스와 육개장을 함께 판다는 근처의 허름한 가게로 들어갔다. 결국 재료의 소진으로 육개장은 구경도 못하고, 시판용처럼 보이는 돈가스 2인분을 시켜 먹고, 느끼한 배를 쓸며 위양지로 향했다.

시간은 이미 3시를 넘기고 있었고, 결국 평범한 돈가스를 먹기 위해 3시간을 돌아왔다는 생각에, 괜히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하지만 우리의 고난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차로 30분쯤 달려 위양지 근처에 접어들자마자 차들의 행렬이 심상치 않았다. 이전에는 미처 보지 못했었는지, 새로 지은 건지, 대형 카페 서너 개가 도로 양옆을 점령하고 있었고, 목적지인 위양지 반경 1km 안에선, 갓길에 주차한 차들과 거북이걸음으로 오고 가는 차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 또한 갓길에 주차한 차들로 즐비한 1차선의 좁은 도로를 조심해서 운전해 갔는데, 넘쳐나는 차들로 입구는 아예 차량통행이 불가했고, 입구를 그냥 지나치며 끝이 없을 것 같은 갓길 주차의 꽁무니를 찾아 그 끝에 붙어 주차할 수밖에 없었다.


겨우 갓길 주차는 했지만, 위양지와는 많이 멀어졌기에 30분 정도 걸어야 했다. 5월의 땡볕아래, 수많은 차들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의 무리로, 그 모습 또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아스팔트 갓길을 걷다 보니, 가드라인을 넘어 샛길로 향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도 남몰래 월담하는 짜릿함으로 가드라인을 넘었는데, 약삭빠른 사람들의 발걸음들이 만들어낸 자국들이 어느덧 지름길이 되어 목적지까지의 도착 시간을 반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위양지에 도착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행렬에 섞여 저수지를 돌기 시작했다. 온 저수지가 이팝나무로 둘러싸여 있을 거라는 상상과는 달리, 많은 나무들 사이에 드문드문 그 자태를 도두라지게 뽐내는 이팝나무들은 저수지 가운데 떠있는 '완재정'이라는 정자에서 그 포텐을 터트리고 있었다.


저수지 한가운데 떠있는 섬에 지어진 완재(완연하게 있다) 정이라는 정자는 안동 권 씨 가문의 재실로 1900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배로 이동했다가 훗날 다리를 놓았으며, 조선후기 사원의 모범 사례와 건축적인 특성으로도 높은 가치를 지닌다고 한다.



그렇게 크지 않는 저수지를 구경하며 사람들 속에 섞여 사진도 찍고 아름다운 경치도 감상했지만, 난 몇 년 전 고즈넉하고 한적했던 그때의 위양지 모습을 떠올리며 못내 아쉬워했다.

밀양이라는 번잡스럽지 않은 도시의 끝자락 농촌 마을의 한 아담한 저수지가 이렇게 유명한 관광지로 급부상한 것은 아마 SNS의 파급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작 나 또한 소셜 네트워크의 수혜자이며 피해자인데 더 이상 말해 무엇하겠는가?

한 번 방송이나 SNS를 타면 그곳은 꼭 가봐야 할 곳으로 급부상하지만, 이젠 더 이상 그곳만의 정취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닌, 상업화되고 소비되는 것 같은 현실이 조금 서글퍼졌다.

이러한 나의 생각은, SNS가 불러일으키는 홍보효과가 침체되었던 경기를 살리고 지역의 활성화를 돕는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 혼자 이 멋진 풍광을 즐기고 싶다는 이기심에서 나온 비루한 발상일 지도 모른다.

당분간 주말이나 연휴엔, 유명 관광지는 피하는 걸로... 나만의 색다른 방법을 찾을 때까지...

난 유서 깊은 멋진 경치의 관광을 하고 나서 전혀 엉뚱한 결론을 내리고 말았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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