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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고통스러운 체험의 승화, 로고테라피

by 정현미

저자 빅터 프랭클은 오스트리아 빈 의과대학 신경정신과 교수이자 그가 창안한 '로고테라피'를 관통하는 심오한 철학으로 20세기의 위대한 사상가로 불려지기도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에 의해 자행되었던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로, 3년 동안 아우슈비츠를 포함해 여러 수용소를 전전하며 혹독하고 비참한 생활을 보내야 했던 그는 그 속에서 철저히 발가벗겨진 실존과 만나게 된다.


그는 지옥보다 더 한 수용소 생활에서

'인간이 우스꽝스럽게 헐벗은 자신의 생명 외에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

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자신이 직접 겪으면서, 또한 여러 수감자들의 행동을 통해 정신과 의사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면밀히 지켜보았다.


그가 직접 체험하고 관찰했던 내용을 담은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는 그런 비참한 생활에서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감정과 무감각의 복잡한 흐름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가진 것을 모두 잃고, 모든 가치가 파괴되고, 추위와 굶주림, 잔혹함,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면서도 사람들이 과연 삶을 이어가야 할 가치가 존재하는가?

그는 이 문제에 천착했다.


그 절망적인 수용소 생활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오로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유 중에서 가장 마지막이며, 누구도 강제할 수 없는 자유인

'주어진 상황에서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를 깨달으며 저자는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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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론은 복잡하고 우울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된다.

도저히 감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삶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남은 삶에 대한 자신만의 가치를 찾아야 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깨달을 때 사람은 마침내 시련을 극복하고 삶을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용소 생활에서 겪은 체험을 통해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이러한 내용을 핵심으로 한 '로고테라피'라는 치료법을 창안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어 정신

치료법의 제3학파 이론으로 불리는 로고테라피는 '의미'를 뜻하는 그리스어 로고스(logos)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실존적 문제를 '의미' 안에서 찾고 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이 의미를 찾고자 하는 마음은 그 사람의 삶에서 근본적으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 의미는 유일하고 개별적인 것으로 반드시 그 사람이 실현시켜야 하고, 또 그 사람만이 실현시킬 수 있다. 그렇게 해야만 의미를 찾고자 하는 그 자신의 의지를 충족시킨다는 의의를 갖게 된다.


로고테라피는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도록 도와준다는 면에서 정신분석과 일맥상통하거나 차이점을 두고 있는데, 가령 환자의 실존 안에 숨겨져 있는 '로고스'를 스스로 깨닫도록 하는 데에 상당한 분석과정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선 정신분석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반면 인간을 그저 충동과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쾌락을 얻거나 서로 갈등하고 있는 이드와 자아, 초자아를 절충시키는 것, 혹은 사회와 환경에 그저 순응하고 적응하는 데에만 관심을 갖는 존재로 보지 않고, 그보다는 그 주된 관심사가 어떤 의미를 성취하는 데 있다고 보는 점에선 정신분석과 구별된다.


저자는 로고테라피에서 '의미'만큼 '책임'도 강조한다.

삶에서 마주치게 되는 각각의 상황이 한 인간에게는 도전이며, 그것이 그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제시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삶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바뀔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인간은 자기 삶의 의미가 무엇이냐를 물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기'라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오로지 책임감을 갖는 것을 통해서만 삶에 응답할 수 있다. 따라서 로고테라피에서는 책임감을 인간 존재의 본질로 보고 있다.

그리고 저자는 마침내 그 범위를 자신을 넘어선, 자기 초월의

영역으로 확장한다.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적 특성을 나는 '인간 존재의 자기 초월'이라고 이름 지었다. 이 말은 인간은 항상 자기 자신이 아닌 그 어떤 것, 혹은 그 어떤 사람을 지향하거나 그쪽으로 주의를 돌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성취해야 할 의미일 수도 있고, 혹은 그가 대면해야 할 사람일 수도 있다. 사람이 자기 자신을 잊으면 잊을수록 - 스스로 봉사할 이유를 찾거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을 통해 - 그는 더 인간다워지며, 자기 자신을 더 잘 실현시킬 수 있게 된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시대의 휘몰아친 광풍 속에 자행된 지옥 같은 상황 속에서 뼈아픈 희생을 치른, 어쩌면 개인의 비참한 체험으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경험을 생생하게 까발려 폭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여러 가지 시련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위한 치료법을 개발함으로써 인류에 공헌한 위대한 거인으로 거듭났다.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처럼 살아라. 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


로고테라피의 행동강령이기도 한 이 말에서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인류에게 전하는 그의 묵직하고 진심 어린 조언이 느껴져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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