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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나의 한국 현대사'를 읽고

'세월호'를 통해 본 우리 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변화

by 정현미

서양사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한 지 어언 3~4년이 넘었다. 우연히 읽게 된 유명 만화책 시리즈에서 시작된 나의 유럽사 편력기는 고대 문명을 지나 그리스, 로마제국에서 그 열의가 절정에 달했다.

그 무렵 나는 서양사에 관한 한 그 비슷한 주제의 얘기가 나오기만 해도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입에 거품을 물며 내가 아는 지식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그러다 정작 우리나라의 역사, 특히 현대사와 마주하게 되면 천성이 본래 조용한 사람인 듯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얼핏 보면 나의 이 소심한 태도가 오늘날의 우리네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된 현대사를 들먹이다 보면 자연히 저마다의 정치색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본의 아니게 분란을 일으킬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솔직히 나의 침묵은 우리 역사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뿌리의 근원은 부지불식간에 주입된 서양 사대주의에 기인한 것이며, 여러 번 시도했지만 온통 반공주의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를 끝까지 잡고 있기엔 흥미위주로 역사공부를 한 나로서는 견디기 어려웠다는 변명을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는 일, 서양사를 공부할수록 느껴지는 미묘한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더 늦기 전에 우리나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했다.





유시민 작가가 쓴 '나의 한국 현대사'는 자신이 태어났던 해인 1959년부터 책을 집필하고 있던 당시인 2014년까지, 총 55년 동안의 대한민국에 관한 기록이다.

자신이 태어나 듣고 보고 겪었던 일들 중, 많은 사람이 중요하다고 여기는, 잘 알려진 사실들에 대해 말하려고 노력했다는 작가는 아직도 미완인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이 현재 우리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기에, 지금 현대사를 논하는 것 자체에 대한 위험성과 고충을 솔직히 털어놓기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진보논객인 자신의 처지를 의식해서인지 시종일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작가의 노력이 글 행간마다 묻어났다. 그래서인지 절제되고 차분한 목소리로 우리의 현대사를 시간순으로 나열하면서 작가 특유의 시선으로 사건들을 돌아보고 그 의미를 짚어보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현대사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흡입력을 경험할 수 있었다.


대입을 위한 공부로 국사를 배웠던 우리 세대는 조선시대까지만 주입식으로 주야장천 암기했을 뿐 출제 비중이 낮은 현대사는 거의 도외시했다.

정작 현대사를 비중 있게 다뤘던 건 소위 대학의 이념서클에서였다. 우리 때까지만 해도 대학가에서 시위가 잦은 때라 시위에 참석하려면 최소한의 진실은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는지 선배들은 갓 입학한 후배들에게 고등학교에선 아예 다루지 않았던 현대사의 명암을 적나라하게 세뇌(?)시키곤 했다.

난 그때 꽤 말을 안 듣는 후배였다. 아마 진실을 알기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알게 되면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봐 애써 회피했는 지도...




과거를 회고하기보다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전망하고 싶어서 이 책을 썼다는 작가는 지금도 진행 중인 현대사를 통해 우리 대한민국이 잘한 것은 무엇이며 잘못한 것은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자 했다.


우리나라는 단시간에 급격한 경제성장을 이루었고 지금은 경제적, 문화적으로 자타공인 선진국 대열에 합류한,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기적을 이룬 나라다.

하지만 양면의 칼날처럼 어두운 그늘도 있었다. 산업화 시대 이후 돈을 먼저 섬기는 물신숭배가 팽배했고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이러한 부정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것이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사건이다.


배가 전복된 근본적 원인은 제어하지 못한 탐욕과 부정부패였다. 그렇게 많은 생명이 희생당한 직접적 원인은 선장과 승무원들의 무능과 무책임이었지만 그 배후에는 넓고 깊은 구조적 원인이 놓여 있었다. 사람이 아니라 돈을 섬기는 제도와 행태, 문화와 관행이었다. 청해진해운이 18년 된 배를 일본에서 들여와 인천-제주 노선에 투입할 수 있었던 것은 정부가 2009년 선령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연장하는 규제완화를 했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 경영진은 여객선을 수직 증축하고서도 배의 무게중심을 바로잡는 보완 조처를 하지 않았으며 선박 복원력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장비가 고장 났지만 수리하지 않았다. 승무원 절반을 비정규직 단기계약으로 고용했으며 업계 최저 수준의 급여를 주었다. 승무원들은 적정량의 세 배나 되는 화물을 선적했고 대형 화물 컨테이너를 규정대로 결박하지 않았으며 과적을 숨기려고 평형수를 뺐다.

이런 식으로 수입을 늘리고 비용을 줄여 얻은 이윤은 청해진해운과 관련 계열사의 실소유주로 추정되는 유병언 씨 일가가 편법을 통해 착복한 것으로 보인다. 청해진해운은 당기순이익을 남기지 못해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청해진해운이 인천-백령도 노선과 인천-제주도 노선의 여러 선박을 모두 이런 식으로 운항했는데도 현행 법률과 규정에 따른 안전관리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부정부패 때문이었다. 정부는 해운사의 이익을 지키는 해운조합에 운항 안전조치 감독을 맡겼고, 선박 구조의 안전검사 업무를 한국선급이 독점하도록 했다. 퇴직한 해경과 해양수산부 관료들이 해운조합과 한국선급 등 모든 안전관리 조직과 기업에 취업해 감독기관을 상대로 로비를 했다. 그렇게 해서 민관을 불문하고 모든 조직과 기관의 안전관리 기능이 마비되었다. 결국 연안여객선의 안전을 지켜야 할 책임을 진 모든 행위주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팽개친 것이다.


정부의 무분별한 규제완화와 개인의 치부를 위해 결탁된 선박업계의 부정부패로 애꿎은 300명 이상의 아이들이 희생된 전대미문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작가는 그렇게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고 미안해하고 또한 분노하는 걸 보면서 앞으로의 우리나라의 미래는 달라지리라 예상했다. 지금보다 덜 추한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은 '위대한 지도자'가 아닌 국민의 그러한 공감과 공명에서 나올 것이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현대사를 건너고 있는 우린 아직 혼란스럽고 앞이 보이지 않는 짙은 안갯속을 헤매는 것 같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된 현대사를 논할 때 조금이라도 자랑스러운 마음이 들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우리들 각자의 머리와 가슴에 이미 들어와 있기에 이 시각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는 것들이 시간의 물결을 타고 나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된다. 역사를 만드는 것은 어떤 외부의 법칙이나 힘이 아닌 사람의 욕망과 의지다. 더 좋은 미래를 원한다면 매 순간 우리들 각자의 내면에 좋은 것을 쌓아야 한다 는 작가의 말에서 무언가 각성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세대에게 당부하는 듯한 다음 말에선 뼈를 때리는 아픔과 함께 가슴이 뭉클해지는 공감을 느꼈다.



만약 오늘의 50대가 10년 후 지금의 60대와 같아진다면, 오늘의 40대가 지금의 50대와 비슷해진다면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없다고 본다. 지금의 40대와 50대는 한국전쟁 이후 두 차례 베이비붐 시기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다른 연령층에 비해 수가 아주 많다. 그들이 변화와 혁신을 싫어하는 보수적 또는 과거 회귀적 고령 유권자가 된다면 대한민국은 일본처럼 혁신이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가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언제까지나 물질에 대한 개별적 욕망과 북한에 대한 감정적 증오가 지배하는 추한 사회로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는 대부분 40대였다. 그래서 40대 시민들은 그들의 슬픔과 아픔에 더 예민하게 공감하고 공명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세대가 2014년 4월 16일 이후 느꼈던 아픈 연민과 슬픈 공감을 언제까지나 잊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그로부터 8년이 지나 그때의 4,50대는 지금 5, 60대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10년 전보다 더 나아졌는가?

경제적인 수치상으로 보면 분명 발전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슬픈 우리들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된다.

빈부의 격차는 더 심해지고 그로 인한 상대적 박탈감은 사람들을 더 날카롭게 만들고 있다. 세대 간 소통의 벽은 더 두터워지고 남녀는 더 이상 동반자가 아닌 대립각을 세우며 서로를 혐오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는 것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작가의 예상이 빗나갔다고 단정 짓고 싶지는 않다. 지금 시대는 큰 바다를 향해 진군하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 중에서 하고 많은 개울 중 단지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군이래 숱한 난관을 겪으면서도 크게 보면 발전적 방향으로 성장해온 우리의 저력을 믿기에 나는 작가의 조언대로 우리 세대의 이익보다 다음 세대의 더 나은 삶을 위해 내면에 좋은 것을 쌓기로 했다.




지금의 우리 50대는 이전의 50대와 다르리라.

배움의 기회 없이 오직 가족 건사하기에 바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누리지 못했던 이전 세대와 달리 우린 어떻게 보면 그들의 이기심에 기생해 이만큼 교육받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젠 우리와 우리 이전 세대의 아집과 욕심을 내려놓고 역사의 물줄기를 다음 세대의 삶에 맞추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방향을 잃은 작은 개울까지 에둘러 끌어안고 도도한 본류에 합류시키는 역사의 위대한 힘이란 걸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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