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의 아Q정전

우리들의 민낯, 현대의 아큐들

by 정현미

아Q정전은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며 혁명가로 일컬어지는 루쉰의 대표작이자 중국 현대문학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소설이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망하고 중화민국이 출범하던 격변의 시기를 살아온 작가는 의학공부를 위해 일본에서 유학하던 중 우연히 환등기를 통해서 본 사진 몇 장으로 그의 진로를 바꾸고 만다.

러시아에 기밀을 넘겼다는 죄로 일본군에 의해 포박당한 채

참수당할 위기에 처한 중국인 주위로 일본인의 하수인이 되어 그를 에워싸고 있는 무리들은, 다름아닌 같은 중국인들 이었다.

그 충격적인 필름을 본 뒤 루쉰은 자신이 고쳐야 할 건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이 아니라 그들의 무지몽매한 정신상태라는 걸 깨닫고 의사가 되는 길을 포기한 채 문학에 귀의하기 위해 귀국길에 오른다.


하지만 2천 년 넘게 존속해오던 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한 조국, 중국에서는 혁명 이후의 상황을 이끌어갈 마땅한 지도자가 없어 군벌이 난무하고 있었고 이런 현실 속에서 한동안 침잠하던 루신은 친구의 권유로 글을 쓰게 된다.

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광인일기> 의외의 큰 반향을 일으키자 루쉰은 그것을 필두로 다양한 작품을 쓰기 시작한다.




아큐정전은 <신보>라는 신문에 연재한 중편 소설로 중국인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기 위해 썼다고 작가 자신이 직접 그 집필 의도를 밝히기도 했다.

제국주의가 판을 치는 당시 세태에서 강대국에 유린당한 약소국의 지식인층에서는 오직 힘 있는 자만 승리하고 그렇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라는 약육강식의 현실인식이 팽배한 반면, 소위 그 사회에 살고 있는 민중은 그 전체적인 판세를 인식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직 한 몸 보존하고자 이리저리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소설 속 아큐는 그 당시 중국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무지렁이 날품팔이로 정확한 이름도, 일정한 직업도, 거처도 없이 일손이 필요할 때 주인이 하라고 하면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는 전형적인 인물이었다.

그 당시 아큐로 대변되는 무지한 민중들이 세상을 대하는 방법은, 강한 자에겐 빌붙고 약한 자는 끊임없이 괴롭히는 이분법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그러한 장면들을 소설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아큐가 주변 인물들로부터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물론, 주로 피해자 입장이었던 아큐 자신도 자기보다 약하다고 판단되는 이를 만나면 시비를 걸며 달려들기 일쑤였다.

아큐의 또 다른 특징은 그만의 '정신승리법'에서 특히 두드러지는데, 어떤 부당한 일이나 심한 박해를 받으면서도 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거나 대항하기는커녕, 머릿속에서 그 상황을 끊임없이 합리화하고 자신을 설득하는 걸로 꿋꿋하게 구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급기야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선, 아무런 고민이나 준비 없이 그저 그 분위기에 도취되어 자신을 업신여기는 지체 높은 양반들조차 벌벌 떨게 한다는 이유로 혁명에 가담하고자 하나 끝내 혁명군에 의해 처형되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신해혁명의 한가운데에서 몸소 혁명을 겪었으나 그 이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정치현실 속에서 방황하던 루쉰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변화시키려면 자신부터 변해야 한다는 사실, 결국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은 외부의 힘이라기보다 자기 자신의 각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하여 진정한 혁명이란 몇몇 선각자들에 의해 낡은 구체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에 앞서, 그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민중 하나하나의 각성과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다는 걸 아큐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흔한 인물의 삶을 통해 말하고자 했다.




루쉰의 이러한 사상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자본주의 톱니바퀴에 올라탄 이후 자칫하면 어긋나 버리는 바퀴의 맞물림에 집중하다 보면 바로 코앞의 상황 이외에 그 어떠한 것에도 눈길을 줄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정작 바퀴의 방향과 속도의 권한을 쥔 책임자는 보지 못한 채

그저 거기서 이탈하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모습은 수많은 아큐에 다름 아니다.


여기서도 루쉰이 그토록 주장했던 '각성'의 중요성이 대두된다.

결코 내 안의 문제만이 아님을, 방향과 속도의 잘못을 인식하고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방향을 바로 잡으라고, 속도를 조절해달라고 키를 쥐고 있는 위정자에게 소리쳐야 한다.

루쉰의 호소에서처럼 변화는 결국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 개개인의 인식과 각성, 변화에의 의지에서 비로소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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