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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Oct 05. 2022

남해 여행에서 링거 맞은 사연(3)

남해 여행을 마치며...

 다음날 아침, 숙소에서 눈을 떴을 때 머리 위로 낯 선 방의 천장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이리저리 몸 위치를 바꿀 때마다 어지럼증은 더했고 혹시나 싶어 간신히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았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심해진 어지럼증과 함께 토할 것 같은 메스꺼움으로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뭐가 잘못된 거지?

쓰러지듯 침대에 다시 누운 나는 천천히 몸을 뒤척이며 어지러움이 조금 덜한 자세를 취하고는 어제 일을 하나씩 반추해보기 시작했다.



 숙소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오랜 세월을 겪어낸 흔적이 다분한 건물이었지만 이 가격에 이 정도감지덕지였. 우린 짐을 방에 옮겨놓고 숙소 바로 앞에 있다는 솔바람 해수욕장을 둘러보기로 했다. 캠핑장을 끼고 있는 평일 오후의 해수욕장은  사람 그림자 하나 없이 조용하고 고즈넉해서 적막하기까지 했다. 나를 위해 해수욕장 전체를 전세 냈다는 남편의 실없는 너스레를 들으며 우린 잠시 해변을 거닐었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린 한동안 잔잔한 일몰을 바라보다 근처에서 저녁을 해결할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주변에는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었다. 해수욕장 인근이라 뭔가 있겠지 하고 방심한 게 문제였다.

7시가 다되어 가는 시간,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나마 가까운 식당으로 이동하려면 차를 타고 움직여야 했다. 만사가 귀찮아진 우리는 그나마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 캠핑장에 딸린 매점이 있길래 소박한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마주한 우리의 현실은 컵라면과 햇반, 위로 삼아 곁들인 맥반석 계란이 다였다. 그 작고 초라한 매점에서는 그 흔한 삼각김밥 하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것들을 사들고 숙소로 향했다. 그러고 보니 보리암에서 시작해 아침부터 줄곧 밥다운 밥 한 끼 먹지 못하고 내리 인스턴트류로 배를 채우고 있었다.

남해에 와서 고작 라면이라니... 그것도 평소에 잘 먹지도 않는...

주로 밥은 집에서 해 먹고 밀가루 음식도 소화가 되지 않아 하루 한번 이상은 허용하지 않는 내가 기껏 여행 와서...

한숨이 나오고 처량한 기분까지 들었지만 다음날 맛있는  먹자고 위로하며 우린 우걱우걱 라면과 계란에 밥까지 말아먹었다.



 어지러움과 메스꺼움은 갈수록 심해졌다. 구토가 나올 것 같아 화장실로 달려갔지만 컥컥거리는 요란한 소리가 무색하게 신물만 올라올 뿐 구토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단단히 체한 모양이었다.

맞지 않는 음식과 낯선 환경, 거기다 불면까지 더해서인지 증상은 심해졌고 제대로 몸을 가눌 수조차 없는 지경이었다.

 

 당황한 남편은 네 등을 두드리다 약국이라도 알아본다며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나갔다. 잠시 후 어제의 그 매점에서 사 왔다며 활명수 하나를 건넸는데 들을 리 만무했다. 괴로워하는 나를 보며 남편은 집으로 바로 가자며 주섬주섬 짐을 쌌지만 솔직히 난 2시간 반이라는 시간을 차에서 견딜 자신이 없었다. 걷는 것은 물론 내 몸 하나 지탱하는 것도 힘들었다. 남편은 숙소 사장님에게 물어 가까운 병원을 알아낸 후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나를 뒷좌석에 태우고 미조항으로 출발했다.


 의사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았다. 병명은... 이미 내가 진단한 걸 의사가 용인한 게 다였다... 호전되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괴로워하며 계산을 하려는 나를 보고 간호사가 솔깃한 미끼를 던졌다.

정 힘드시면 수액을 하나 맞으시던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자 무심히 던진 미끼움찔하는 찌의 반응을 보고 내심 당황했는지 간호사는 한 톤 높아진 목소리로 40분쯤 걸린다고 답했다. 딴엔 헐겁게 물린 먹잇감이 달아날까 미니멈으로 시간을 안내한 듯했다.

난 가타부타 앞뒤 상황을 계산할 입장이 아니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뭐라도 갖다 바칠 요량이었다. 나는 기꺼이 그 미끼를 물고 낚싯대를 쥔 간호사에 이끌려 칸막이로 가려놓은 병원 뒤쪽, 소위 물리치료실이란 곳으로 딸려갔다.



 물리치료실이라고 했지만 문이라고는 없는 하나의 공간을 커튼이 유일한 경계 역할을 하며 두 부분으로 나누고 있었다. 간호사가 그중 한 곳의 커튼을 걷자 서너 명의 비슷한 차림의 할머니들이 침대에 누워 물리치료를 받고 있는 모습에 순간 나는 깜짝 놀랐었다.

나이 지긋한 남자 물리치료사에게 인계된 나는 비어있는 침상으로 안내되었다. 오한도 온 터라 침대에 깔려있는 온돌 보료의 스위치를 켰는데 고장인지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안내된 나는 반대편에 처진 커튼을 걷자 또 한 번 놀라고 말았다. 이번 방엔 할아버지 몇 분이 누워계신 게 아닌가? 순간 민망했지만 정신이 없던 나는 뒤이어 간호사가 준비해온 수액을 맞으며 사경을 헤매듯 혼미한 상태에 빠져 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간호사가 바늘을 뺀 자리에 부친 반창고를 한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난 균형이 흐트러진 자세로 비틀거리며 병원 카운터로 다가갔다. 나아졌냐고 묻는 간호사는 내가 두리번거리자 수액을 맞는 동안 남편은 잠깐 바닷가로 산책 갔다며 잠시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하고 난 병원 한쪽에 놓여있는 나무벤치에 앉았다. 메스꺼움은 조금 남아 있었지만 어지럼증은 한층 덜한 것 같았다.

여전히 혼미한 정신으로 앉아있자니 그때서야 병원의 모습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평상복에 어떤 연유인지 한쪽 바짓단을 접은 그저 평범한 중년 아저씨 같은 의사와 나이 차가 조금 있어 보이는 간호사 2명,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온,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피부가 까무잡잡한 꽝마른 몸매의 물리치료사, 이런 구성원들 운영되는 것 같은 병원은 연신 치료를 마치자마자 다음날 진료예약을 잡으며 출근도장을 찍어대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때마침 점심때라 나이 든 간호사가 주문한 중국집 음식이 도착했고 병원에 드나드는 사람들마다 사모님을 연발하는 걸 보니 수간호사로 보이던 그 간호사가 의사의 부인인 듯했다.

몽롱한 정신으로 연극을 보듯 주변을 구경하고 있을 때 전화를 받은 남편이 병원문으로 들어섰다.




 계산을 하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병원을 나서자 야속가을바람이 헝클어진 내 머리칼을 더 흩트려 놓았다.

날씨는 왜 이리 좋은 거야? 끝 간 데 없이 높고 푸르기만 한 하늘을 보며 괜히  딴지를 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편은 괜찮으면 미조항 바다라도 한 번 보고 가자며 내 손을 끌었다.


남해 미조항

 그렇게 아름답던 하늘과 바다도 아픈 몸 아래에선 무용지물인 것 같았다.

여름기를 완전히 뺀 시원한 바람과 눈을 물들일 것처럼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투명한 하늘이 자꾸 날 희롱하는 것 같았다. 제 몸 하나 건사하지 못한다고 마구 놀려대는 것 같아 나 또한 서글픈 심술이 났다.


 2시간 반 동안 차 뒷좌석에 누워 짐짝처럼 실려오면서 생각했다.

건강이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너무나 평범한 진리를 난 온몸을 써가며 각인하는 중이라고...

그리고 점점 늙어가는 내 몸이 정신을 가두어 옴짝달싹 못하게 하도록 더 늦기 전에, 더 나이 들기 전에 가능한 한 빨리 길을 나서라고 자꾸만 자꾸만 누군가가 등을 떠미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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