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에 남해에 몇 번 왔을 때 번번이 길이 막혀 머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빠져나오기에 급급했던 남해의 핫플레이스독일마을.
그날은 우리의 질주 본능을 가로막는 그 어떤 것에도 방해받지 않고 막힘없이 달려와선 널널하게 비어있는 자리에 여유 있게 주차하는 그 맛 또한 짜릿했다.
평일에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때라 텅 빈 식당을 둘러보며 우린 전망 좋은 2층에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나온 음식들. 다양한 소시지들과 빵으로 구성된 독일 가정식 플래터와 고기를 망치로 얇게 다져 돈가스처럼 튀김옷을 입혀 튀겨냈다는슈니첼, 그리고 독일마을에서 빠질 수 없는 주인공,맥주도 무알콜로 한 잔 곁들였다.
아~이 맛이구나!
무알콜 한 모금에 취기라도 오른 듯 난 연신 감탄사를 뱉어냈다.
쾌청한 날씨의 높고 투명한 하늘, 탁 트인 경치와 눈을 돌리는 곳마다 흔하게 와닿는 에메랄드빛 바다, 이 모든 것이 음식 안에 마법의 소스처럼 녹아있었으므로 우린 음식을 입에 넣기도 전에 이미 그 맛에취해 있었다.
아, 이래서 여행이 좋구나. 이런 여유가 좋구나.
그리고.. 돈... 이 좋구나...
흥에 취해 결국 뻔한 결말에 와닿아버렸다...
이런 흔한 결론에서 벗어나고자이 나이에 어렵게 감행한 모험인데...
순간, 난힘들게 먼 길을 빙 둘러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느낌이었다.이미 시작부터돈을벌어야 할 궁색한 이유를 찾아, 나와 남편을 설득시키기위해 들러리용 여행에라도 나선 듯 불순한 의도가 들통나버린 것 같았다.
그것도 이렇게 낭만적인 자리에서...
경제적인 면에서 다소 생각의 차이가 있는 남편과의 소소한 언쟁을 피하기 위해 우린 식사를 마치자마자 장소를 이동해 독일마을 곳곳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거리는 깨끗했고 잘 닦여진 도로를 따라 양옆으로 화려하게 치장한가게들이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하며 손님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뾰족뾰족한 붉은 지붕들이 서로 이마를 맞댄 채 이웃하고 있는 모습은 정말 그 어느 한 집에서 헨델과 그레텔이라도 뛰어나올 정도로 동화 속 마을을 연상케 했고 단정하게 이발한 나무들을 품은, 정원이 넓은 집들은 마치 유럽의 아기자기한 성을 옮겨 놓은 듯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했다.
한참을 산책하듯 길을 따라 내려가다 너무 멀리 왔나 싶어 차를 주차해놓은 파독전시관으로 발길을 되돌렸다.
1960년대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하여 독일에 파견된 광부와 간호사들, 독일 교포의 뿌리가 된 그들의 한국 내 정착을 돕기 위해 조성되었다는 독일마을. 역사에서 시작해서 관광 상품으로 남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이 마을의 유래를 품고 있는 파독전시관 앞이 매우 분주했다. 곳곳에 세워진 천막과 쉴 새 없이 드나드는 택배차량들, 알고 보니 이번 주말에 있을 독일마을의 가장 큰 행사인 맥주축제를 준비하느라 마을 전체가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며칠 후면 이곳은 예의 그 많은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 없는 곳으로 탈바꿈하겠지...
축제 속에 녹아들어 즐기고 싶은 설렘 가득한 기대보다 번잡한 전후 상황부터 상기하며 서둘러 발을 빼려는 우리는 아무리 고개를 가로 저어도 이미 세월의 그물에 갇혀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남해의 끝단 미조면에 위치한 숙소로 가는 길엔 보물섬 전망대랑 하늘 그네로 유명한 설리 스카이 워크도 있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다음날도 오롯이 하루가 남아 있기에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하나씩 둘러보자고 했다.
숙소까지 이어진 커브길은 바다가 자연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전형적인 해안 드라이브코스였다.
우리는 약간의미심쩍음을 안고,가격과 후기만 참고로 했을 뿐 그 외의 주변 여건따위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미지의 숙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