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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미 Oct 02. 2022

남해여행에서 링거를 맞은 사연(1)

남해 보리암과 앵강다숲


 1박 2일로 남해를 다녀오기로 했다.

오래전부터 마음먹은 일이었지만 낯곳에서 유독 잠을 가리는 나의 고질병 때문에 차일피일 미루다가 눈부신 가을 날씨의 유혹에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어 감행한 여행이었다.


 오랜만의 1박 여행이라 나름 설레었던지 전 날 밤잠도 살짝 설쳤다. 남편은 당일치기를 권했지만 간 김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픈 나의 치기 어린 오지랖이 이번 여행에서도 불쑥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남해 보리암


첫 번째 목적지 남해 보리암을 고른 것은 나쁘지 않은 선택이었다. 

남해 금산 중턱, 아슬아슬한 절벽 위에 세워진 수려한 풍경을 자랑하는 보리암을 찾았을 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형언할 수가 없었다. 

 마치 자연의 일부인 듯 그 속에 녹아든 사찰의 모습과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이 마치 공중에서 줄을 타듯 아슬아슬하게 서로를 지지대 삼아 오랜 세월을 버텨왔다는 사실이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보리암의 해수관음상


 보리암을 에둘러 조금 내려간 자리에선 탁 트인 전망앞에 두고 세상을 내려다보며 서 있는 거대한 해수관음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인자한 미소로 세상의 모든 고난한 중생들을 품어 줄 것 같은, 자애로운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불상은 보리암을 지켜주는 든든한 수호신 같았다.


금산에서 바라본 남해 전경


 이어  조금 무리해서 닿은 금산 정상, 옛 봉수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곳에서 바라본 남해의 전경은 이 세상 것이 아닌 듯 손에 닿을 수 없는 아련한 이상향의 무릉도원, 그것에 다름 아니었다.


금산산장


 애초에 출발 전부터 간식으로 낙점했던, 보리암만큼 유명한 금산산장의 라면을 먹을  무슨 천상의 음식이라도 마주한 사람처럼 넋이 나간 듯, 라면을 먹는 건지 경치를 먹는 건지 그 맛과 경치에 취해 두 눈과 입도 구분하지 못한 채 마구 흡입하기에 바빴다.


 나름 경사가 있고 제법 많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유람하금산과 보리암에서 하산하는 길은 내리막 길이라 한층 가볍고 여유로웠다.

길 양옆으로 빽빽하게 들어선, 서로 머리 위로 있는 힘껏 뻗은  손을 마주 잡은 듯 아치를 이루어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의 호위를 받으며, 때마침 불어온 가을바람에 목덜미에 맺힌 땀방울의 미세한 떨림까지 느껴져 더욱  시원하고 상쾌했다.


남해 지도


 하지만 이후 일정부터 뭔가 꼬이기 시작했다.

우린 저녁에 다랭이 마을을 둘러볼 요량으로 보리암에서 다랭이 마을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인 이동면에서 꽃무릇으로 유명한 앵강다숲을 둘러보고 근처에서 늦은 점심을 먹기로 계획했었다.


앵강다숲 꽃무릇


  그러나 직접 찾은 앵강다숲의 꽃무릇 군락은 일찍이 매스컴에서 보았던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는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화면에서 두 눈을 가득 채우듯 만개한 꽃을 본 건 1~2주 상간이었지만 대부분의 꽃들은  새 시들어 그 빛이 바랬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생생함이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평일 오후라 그런지 캠핑장으로 쓰이고 있는 바다 주변은 인적이 드물어 황량하기까지 했다. 

평일 여행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당황스럽게  건 점찍어 았던 근처 음식점이나 카페가 거의  휴무이거나 점심영업만 반짝하고 문을 닫은 곳이 많아 식사할 곳이 마땅찮았다는 것이다.

화려하고 번잡한 주말이 빠진 남해의 삶은 생각 외로 느리고 권태롭기까지 한 것 같았다.


 어쩔 수 없이 노선을 변경해 브레이크 타임이란 없을 것 같은 독일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하기로 하고 왔던 길을 돌아

남해에서 가장 핫한 장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땐 알지 못했다.

그 길이 이번 여행 참사의 서막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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