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우리 지역의 명소 찾기에서 마산지역을 둘러보기로 했다. 만보 걷기 앱에서 추천한 10개의 장소중 유독 낯선 곳이 눈에 뜨였는데 얼마 전까지 전국에 우영우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그 웅장한 모습을 선보이며 인기를 끌었던 바로 그 팽나무가 있는 '동부마을'이었다.
팽나무
드라마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던 주인공 우영우가 자신을 버린 엄마의 존재를 알고 처음으로 둘이 상봉하는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한 팽나무는 그 장면의 중요성 못지않게 그 존재감이 무척 컸던 걸로 기억한다.
그 팽나무가 창원에, 엄밀히 말하면 마산 북부리동부마을이라는 조그마한 농촌 마을에 존재한다는 걸 안 건 가끔씩 보곤 하는 창원시보의 첫 지면을 한가득 메우고 있던 거대한 나무 사진을 보고서였다.
그 뒤로 매스컴을 통해 주말이면 팽나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그 일대 교통이 마비되는 현상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곤 했었다.
우리 주변에 드라마 촬영지로 소문난 핫 플레이스가 있다니
꼭 한 번 보러 가야지 생각은하고 있었지만 일상에 묻혀 잊고 있다가 이번에 그 이름과 다시 딱 마주친 것이다.
동부마을에서 차로 15분쯤 떨어진 거리에 주남저수지도 있길래 우린 팽나무를 보고 나서 저수지로 이동해 이틀 동안의 지역 명소 방문하기 프로젝트를 마무리짓기로 했다.
동부마을 입구
팽나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붐빈다는 주말을 피해 금요일 오후 3시쯤에 출발했다. 아침부터 흐린 날씨로 오후의 더위쯤은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목적지에 도착하자 날씨의 심술인지 환영의 의미인지구름 뒤에 숨어있다 타이밍에 맞춘 듯 등장한 태양이 우리를 정조준하기 시작했다.
평일이었지만 마을 입구에 이미 차량 10여 대가 주차하고 있어서 우린 그 줄 꽁무니로 가서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저 멀리 팽나무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고 그 밑으로 꽤 많은 사람들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
많은 관광객들로 주민들의 불편이 있었는지 마을 관계자 외의 차량은 마을 안 출입이 통제되고있어서 팽나무가 있는 마을 뒤편 야트막한 언덕까진 좀 걸어야 했다.
입구에서 바라본 팽나무와 마을 전경
쏟아지는 햇살을 양산으로 방어하며 우리는 마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걷기 시작했다.사방이 푸른빛의 벼가 한창 여물어가는 논이었고 30여 채의 집들뒤로 펼쳐진,둔턱이 높은 도로를 따라 드문드문 심어진 가로수들이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 같았다.
마을에 새겨진 벽화
팽나무가 있는 언덕까지 가는 동안 드라마속 장면들과 제2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고래들이 그려진 벽화가 시선을 끌었다.
마을을 휘감은 듯 이어지는 길을 돌아가자 몇 걸음을 앞두고 이미 유명한 샐럽이 된 팽나무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 사람들이 이래서 현장을 찾는구나!
아무리 값비싼 카메라로 정밀하고 선명하게 촬영을 한다 해도 현장의 그 생생하고 압도적인 감동까지 담아내지는못한다는 걸 또 한 번 느끼는 순간이었다.
팽나무
오직 자신만을 위해 마련된자그마한 언덕을 다 차지하고 말겠다는 포부를 드러내 듯 가지를 사방으로 마음껏 펼친 거대한 팽나무, 하지만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넉넉한그늘만은허락했으며자신의 곁에서 드넓게 펼쳐진 들판을 관망할 수 있는 최적의 자리 또한남겨놓는 아량을 베풀며 그렇게 수 백 년의 세월을이어오고 있었다.
팽나무가내어준 자리에서 바라본 주변 경치또한 일품이었다.예상치 못한 곳에서 횡재를 만난 듯 덤으로 맞이한 사방이 탁 트인 아름다운 전망은 푸르른 가을 하늘과 어울려 빼어난 아국적 정취를 풍기고있었다.
마을 뒤쪽 가로수길
우린 팽나무 근처에 머물면서 사진도 찍고,이리저리 나무 주위를 돌며 한참을 보내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언덕을 내려왔다.더위도 식힐 겸 마을 뒤로 난 가로수들이 즐비한 길 위의 벤치에서잠시 쉬었다 가기로 했다.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푸르른 들판이 펼쳐진 이 마을이 참 고즈넉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다 정작 이 마을에서 생업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이 마을이 어떻게 느껴질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들에겐 태어날 때부터 그 모습 그대로인 이 마을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까? 오히려 변함없는 그 모습이 지겹지는 않을까? 그 물음은 나에게로 옮겨졌다.
내가 이 마을에 산다면? 나고 자란 이곳을 아름답다고 느끼며 평생을 살 수 있을까? 지금 이 마을에 살고 있는 젊은이들은 과연 계속 이곳에서 살고 싶어 할까?
사실 나 자신도 선뜻 대답하기 주저하는 걸 보며 이제껏
느낀 모든 것이 철저한 관광객의 시선임을 깨달았다.
조용하고 한가하던 이 마을에 갑자기 들이닥친 수많은 외부인들, 시에서는 홍보효과로 어느 정도의 반사이익을 누릴 수 있을지 모르나 평온한 일상을 누리며 고단한 생업에 종사하던 주민들에게는 여간 성가신 일이 아닐 것이다.
새삼 호들갑을 떨며 동네 주변을 휘젓고 다닌 것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드라마는 끝났지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인기만큼 그 열기는 당분간 이어질 것이다. 나 또한 드라마의 여운을 간직했기에 더 많은 감정에이끌렸는지도모른다.
하지만 언젠간 그 불씨 또한 잦아들 것이 분명하기에 그 어떠한 번잡함이나 혼란 없이 최소한 마을 사람들의 평온한 삶은지켜지길 바래본다.
난 오늘 시류에 섞여 수백 년을 살아낸 조상님 같은 팽나무에게서 삶의 정기를 받고 왔다. 더불어 캐도 캐도 멈추지 않고 나오는 고구마 줄기처럼,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끊임없이 이어지는매력에 또 한 번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