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방공호

육보차

by 반야심경

‘육보차’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차다. 내 주변의 차 애호가들 중에서도 즐기는 이가 많지 않다. 중국 광서성 일대에서 주로 마시는 흑차로, 소화 기능에 효과가 좋아 일종의 상비약처럼 마시곤 한다. 다이어트에도 좋다고 하니 입소문을 타면 언젠가 보이차처럼 품귀 현상이 일어나려나.

아직은 국내에서 인기가 많지 않아 보이차만큼 비싸진 않지만, 판매처가 많지 않아 맛있는 육보차를 구하는 건 쉽지 않다. 그래서 괜찮은 육보차를 만나면 늘 쟁여두기 바쁘다. 나는 매년 차문화대전에서 만나는 육보차 전문 유통사나 서촌의 유명한 차 취급점에서 주로 구매한다.


육보차에는 흔히 ‘빈랑향’이 난다고 한다. 하지만 빈랑을 먹어본 적 없는 내게 그 향은 알 수 없는 감각이다. 빈랑은 마약처럼 각성 효과가 있어 전 세계적으로 인기이지만, 이로 인해 금지된 국가들도 있다고 한다. 단지 나에게는 편안함으로 다가오는 육보차에서 이 열매향이 난다는 게 와닿지가 않는다.


향기가 좋거나 푸릇한 것도 아니고 흙 맛나는 이걸 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도 잘 모르겠다. 여행 내내 신나게 놀았으면서도 막상 집에 오면 ‘역시 집이 최고지.’ 하며 소파에 발랑 눕는 것처럼 이것저것 신나게 마셔도 결국 제일 즐겨 마시는 건 육보차다.


나는 집이라는 공간을 유난히 중요하게 생각한다. 집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편안하고 안전한 곳이어야 한다는 믿음이 있어서 손님을 잘 초대하지도 않는다. 내 방공호에 누가 들어오는 게 본능적으로 꺼려진다. 내 세간살이, 내 옷, 내 술, 내 냉장고 속 식량들까지 ― 누군가에게 보여주기엔 내 속을 속속들이 내보이는 느낌이랄까. 사귀는 사이어도 집을 잘 오픈하지 않아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로나로 인해 내 집 문턱이 조금 낮아졌고, 그 덕에 더 친밀한 연애를 할 수 있기도 했다.


무언가를 마시지 않고는 못 배기겠는 밤에 카페인이 적은 이 차를 천천히 내려 마신다. 음악을 틀고 식탁에 앉아 있노라면 편안함이 깃든다. 엉덩이 모양대로 내려앉은 방석, 글씨 쓰다가 튄 잉크 자국이 묻어 있는 벽지, 아무한테도 보여주지 못할 낡은 아보카도 잠옷. 그래 이게 바로 ‘집’이지. 좋다.

keyword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