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합리화

히비끼 하모니 & 가리모쿠60 K chair 1 seater Sunto

by 반야심경

물건 살 때 괜히 더 신중해지는 품목들이 있다. 가죽 재킷, 흰 셔츠 같은 베이식한 아이템, 그리고 한 번 들이면 오래 써야 하는 가구 같은 것들. 이렇게 유행 안 타고 오래 함께할 아이들은 가격을 떠나 신중해진다. 핸드폰 바탕화면도 한번 세팅하면 다음 폰 바꿀 때까지 좀처럼 바꾸지 않는 성격인지라 오래 쓰는 것들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이번에 이사를 준비하면서 꼭 새로 들이고픈 아이템이 있었으니 바로 ‘라운지 체어’이다. 의자류는 진짜 어렵다. 예쁜 게 다가 아니고, 앉아 봤을 때 편해야 하니까. 앉아도 보고, 기대 누워도 봐야 결정할 수 있다. 불편한 의자는 그냥 큰 ‘장식품’이지 않나. 게다가 좀 예쁘면 의자 하나에 50만 원은 훌쩍이니 4인 가족 테이블에 들이려면 다이닝 체어에만 200만 원이 훌쩍 넘어간다. 모든 소비에는 ‘합리’라는 단어가 붙어야 덜 찔리기 마련이라 ‘라운지 체어’를 구매할 때도 합리화라는 포장을 해야 했다. ‘시바시바’ 소리가 절로 나오는 밥벌이 생활인데 정성껏 합리화하지 않고서 그냥은 못 사지.


가리모쿠.jpg 사진: 리모드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가리모쿠60 K chair 1 seater Suntory barrel story’다. 동양인 체형에 알맞은 높이와 넓은 시트 너비로 앉았다 일어날 때 '끙차'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함. 60년대에 만들어져 지금 까지 통용되는 클래식한 디자인. 사용하다가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할 수 있는 친환경성. 여기까지는 그냥 핑계고 가장 중요한 것은 'Suntory Barrel'이라는 점이다. 위스키 브랜드인 산토리와 협업해서 오랫동안 위스키를 숙성시켰던 오크통을 다시 가공해서 만든 모델이라니! 기본 스탠더드 K chair보다 한 40만 원가량 더 비싸면 어떠한가! 스토리까지 담아냈으니 충분히 납득된다. 오크통을 재활용하여 옹이가 있으면 어떠한가. 거기 앉아 히비끼 한잔 하면 을마나 좋을꼬. 이 의자를 모니터 화면으로 본 순간,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벌써 새 집 베란다 창가 자리에 놓여 있었다.


산토리 증류소에서 나온 의자니 술도 거기 걸로 맞춰야지. 오늘의 술은 ‘Hibiki’다. 재패니즈 위스키는 참 맑고 뽀용뽀용하고 몽글몽글하다. 그래서인지 나는 특히 봄철에 일본 위스키가 자꾸 당긴다. 일본 위스키를 대표하는 산토리의 주요한 증류소인 야마자키와 하쿠슈 증류소의 원액을 섞어 만든 블렌디드 위스키가 바로 히비끼 하모니이다. 바틀에 크게 쓰여있는 이 ‘울릴 향(響)’을 일본어로 히비끼라 읽는다. 마스터 블렌더가 브람스 교향곡 1번에 감명받아 만들었다고 하니, 혼술 할 땐 그 곡을 틀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근데 막상 들어보면 꽤 웅장(?)해서 술 마시다 보면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주인공 같은 기분이 들긴 하다. 아름다운 24면의 크리스탈 병은 일본의 24 절기를 상징한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공병이 중고로 몇만 원에 팔리기도 한다.


맛은 블렌디드답게 아주 부드럽고 꿀떡꿀떡 넘어간다. 위스키 초보자도 쉽게 입문할 수 있는 술이다. 사실 맛난 재패니즈 위스키가 워낙 많아 내 ‘최애’는 아니지만, 애정하는 동생이 ‘언니한테 잘 어울리는 술 같아요.’라며 선물해 준 이후로는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이렇게 글까지 써버렸으니 이제 이 라운지 체어는 꼭 사야 한다. 이 정도면 정성 들인 합리적 소비 과정이라 할 수 있겠지? 암, 그렇고 말고.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