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형부가 엄마한테 언니 칭찬을 입이 마르게 했데. 돈 쓰러 해외여행 간 마누라 뭐가 예쁘다고
아이와 함께 시드니 한 달 살기 중에 설명절 혼자 있을 엄마가 걱정되던 참에 남편이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누이와 함께 하는 여행에 친정 엄마까지 초대를 했다.
평소에도 70년대 공장에서 일하면서 원탑으로 뽑혔던 일화, 열거하기도 힘든 중매결혼의 단점, 남편 흉보기, 세탁기와 건조기도 없던 시절 찬물에 기저귀 빨아가며 알뜰살뜰 자식들 키우던 이야기, "요즘 애 엄마들은 애 키우기 편하지"로 대동 단결하는 친정엄마와 시어머니 사이였기 때문에 함께 여행을 갈 수도 있겠으나, 그녀들을 연결하는 나 빼고??? 의아한 느낌이 들었다.
여하튼 시댁 식구들과 친정엄마의 의아한 동행에서 신이 난 그녀들의 사진이 시댁 단톡방, 친정 단톡방을 점령했다.
여행 내내 친정엄마에게 마누라 칭찬을 했다는 남편은 '아무래도 장모님께 할 말이 없어서 아니었을까'라는 의심이 들지만, 결과적으로는 친정 엄마의 기분을 한층 업 시켜 올해 최고로 행복한 날이었다는 평가를 듣게 되었다.
'그래, 진짜 고마운 사람, 좋은 사람이야'
'내가 무슨 복에 저런 착한 남편을'
'한국에 가면 더 잘해줘야지'
생각하고 있던 참에
블로그에 비공개로 쓴 2018년 2월 12일 일기가 6년 전 오늘로 보였다.
때는 남편이 퇴사하고 변리사 공부를 하고 있던, 또 내가 회사 다니고, 애 키우고, 공부하는 남편 학원비, 독서실비 내고 삼시 세 끼를 챙기던 시절.
서른 넘어 고시생활을 하던 남편이 왜 이리 짠하던지. 매일 눈물이 나서 공부하던 뒷모습을 일부러 외면하곤 했다. 아이가 울면 공부하는 남편 방해될까 어르고 달래고 아기띠 메고 밖에서 서성이기도 했지.
모쪼록 힘내시구려 험한 세상 다독다독 걸어가세
와! 이걸 내가 썼다고? 편지도 아니고 혼자 끄적이는 일기장에? 갑자기 내가 너무 대견하고, '우리 남편 진짜 결혼 잘했다. 남편이 친정엄마 데리고 여행을 백만 번 가야 되겠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이토록 간사한 나라니.
인생사 기브 앤 테이크 아니겠어요? ㅎㅎ
연애 8년
결혼 11년
무려 20년의 시간 동안
그도 나도 험한 세상에서 상처받기도 하고 좌절하기도 하고 열심히 노력해보기도 하면서
삶에서 그저 주어지는 것은 없다.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주는 무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그럼에도
밥벌이의 노고
부모님의 노후
내집마련
회사에서 살아남기
아이 키우기와 교육
노후준비까지 무거운 삶의 짐의 책임을 함께 지며 서로 위로하고 응원하며마음을 나누고 있기에 다행이라는 안도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