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 미소

어린아이는 행복 그리고 축복이다. 그리고 우리 엄마와 유년 시절의 회상.

by 장가모

나는 광안리에 위치한 작은 양식집이자, 브런치집이자, 카페이자, 여름엔 빙수집인 아무튼 잡다한 일을 하는 곳에서 일하고 있다. 우리 사장님은 욕심이 참 많으셔서 처음에 브런치 카페 프랜차이즈로 사업을 시작하시더니 2년 계약이 종료된 이후에 본인만의 새로운 가게를 차리셨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만 메뉴가 너무 다양하다 보니 전문성이 부족해 보여 손님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래도 꿋꿋하게 사장님은 본인이 하고 싶은 사업을 하시는 모습이 대단해 보인다.


‘오늘 역시 한가하겠구먼,,’


유튜브 쇼츠를 보며 하품을 하던 찰나 멀리서 길쭉하고 작은 얼굴을 가진 백인 여자와 조금은 야위어 보이는 한국인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그리고 조그만 아이가 백인 여자 품에 안겨 세상모르게 새근새근 잠을 자고 있었다. 그들은 검은색 작은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문을 열고 들어왔다. 기분 좋은 미소로 백인 여자가 인사를 하더니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남자는 나를 쳐다보지 않고 자리로 향했다. 그들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더니 메뉴를 결정했다.


에그베네딕트 x1
아메리칸 블랙퍼스트 x1


포스기 옆에 위치한 키오스크 화면에 2개의 메뉴가 올라왔다.


‘나른한 오후에 브런치를 즐기러 왔나 보구나. 낭만 있는 부부야.’


앞접시, 수저, 냅킨, 물티슈를 챙겨 그들이 위치한 좌석으로 향했다. 꼬마 아이는 안쪽 좌석에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아주 안정적으로 몸을 웅크린 자세는 공벌레를 연상시켰다. 나는 제자리로 돌아와 그 아이를 빤히 쳐다봤다. 잠시 깊은 생각에 빠졌다.


회상

어린 시절부터 세상물정 모르던 우리 엄마는 책을 읽으면 똑똑해진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듣었는지 나를 붙잡고 책을 읽어 주었다. 생전에 책과 일면식이 없던 엄마는 또박또박 국어책을 읽듯이 책을 읽었다. 그 말투에는 감정과 이야기의 흐름이 결여된 정직하고 딱딱한 말투였다. 나는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떼를 쓰며 외쳤다.

유년 시절 엄마, 형, 나
“책 읽기 싫어어어,, 으악”
그런 나를 붙잡고 엄마는 반강압적으로 꾸역꾸역 책 한 권을 다 읽었다. 어렸던 엄마는 그때 당시에 책을 읽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보다 단순히 책을 읽혀야 한다는 일에 꽂혔나 보다. 멀리서 KBS '해피투게더'를 보며 너털웃음을 짓던 아빠가 말했다.
“네가 생전에 책을 안 읽어 봤는데 읽기야 하겠어?”
아빠의 말투는 항상 비꼬움이 실려있지만 맞는 말이다. 엄마는 책 읽는 법을 몰랐던 것이다. 엄마는 4녀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20살이 되자마자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일을 시작했다. 마트 캐셔, 홀 서빙, 고깃집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일을 했고 60살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 일주일에 1번 쉬며 일을 하고 있다.
20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엄마는 어린 시절 아이들의 학업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던 점을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 엄마를 닮은 나는 똑똑하지 않다. 유년 시절에 엄마가 걱정을 많이 했지만 다행히도 고등학생 때 공부하는 친구들을 만난 덕분에 꾸역꾸역 수능을 보고 지방의 한 국립대에 들어가 4학년 2학기 째 다니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남들과 다르게 명확한 장점이 있다. 엄마를 쏙 빼닮아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끈기가 강하다. 이 강점은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 또한 지금 엄마가 알게 되면 아주 기뻐할 사실이 있다. 나는 엄마와 다르게 활자를 쫓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내며 후천적으로 알게 된 사실이다. 오히려 즐거움을 느낀다. 참 놀라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린아이가 단잠 속에서 깨어나 멍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머리에 생긴 작은 까치집이 얼핏 보니 하트 모양으로 보였다. 참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 가족은 이미 식사를 마쳤고 백인 여자는 휴대폰, 한국 남자는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아이는 나를 신기한 동물 쳐다보듯 계속 멍하니 보더니 생긋 웃었다. 내 입꼬리도 저항할 수 없었다.


아이의 미소는 무해하다 못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뭔가를 주고 싶다는 호기심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을 아이의 모습을 생각하며 두 리번 두리번거리다가 일본 야채 과자를 발견했다.


그것을 들고 부모님에게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이거 야채 과자인데 아기랑 같이 드시겠어요..?”


소심한 목소리로 백인 여자의 눈을 흘끗 보며 야채 과자를 쭈뼛쭈뼛 내밀었다.

그녀는 감사함을 어색한 한국식으로 표현했다.


오.. 너 오무 감싸해요.”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로 인해 행복할 아이를 생각하니 싱그럽고 설렜다.


가녀린 얇은 목소리를 가진 엄마를 쏙 빼닮은 아이. 주먹만 한 얼굴과 잘 익은 피스타치오처럼 오목조목하고 동글동글한 큰 눈, 도톰한 입술, 보홀의 에메랄드빛 바다를 연상시키게 하는 푸른색 눈동자, 야광색 머리핀을 양쪽에 고정시켜 놓은 채 과자를 들고 있는 귀여운 아이가 환하게 웃는다. (그 과자의 크기는 그녀의 손보다 더 크다.)


이 세상에 가장 큰 축복과 행복 중 하나를 꼽으라면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일이라고 고민 없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순수한 결정체를 눈앞에서 보고 있으면 고귀하다 못해 감격스러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다.

나는 왼쪽, 5살 시절


‘우리 엄마도 나를 저렇게 이뻐해 줬겠지’


엄마가 노래방 18번으로 하던 말이 문득 기억났다.


“우리 xx이, 어릴 때 참 이뻤지.. 어릴 때 뽀옥뽀옥 기어 다니다가, 우유를 어찌나 많이 먹던지.”


우리 엄마를 떠올리니 생각지도 못한 타이밍에 감정이 올라와 뒤로 돌아 급하게 감정을 가라앉혔다.

엄마는 내게 그런 존재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고맙다는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나의 아이를 언젠가 꼭 가지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다. 지난 24년 동안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생각이다.


새삼 나도 나이를 먹은 듯하다. 어른이 되어 가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