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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Jun 15. 2021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주세요!

"일단, 설명은 나중에 하고 주사부터 맞읍시다."

마스크 위로 보이는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의사선생님이 말한다.


이미 경험을 해봐서 각오는 했지만 간호사가 진료 데스크위에 올려둔 주사기를 보자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살짝 따끔합니다"

깜빡이로 한마디 넣는가 싶더니.. 바늘은 직구로 들어온다.

"윽..으....."

마스크 속 내 얼굴이 일그러진다. 이런 괴상한 표정이라니.. 마스크를 써서 다행이구나 싶은 생각도 잠시 스친다.


 "또, 어디 어디죠?"

내 머릿카락을 뒤적이면서 의사가 말한다.

"여기 어디쯤..이라고 했는데.."

뒤통수 어딘가를 가리키며 애꿎은 머릿카락만 들춰본다..

사실, 어딘지 나도 모른다.


내 머리카락 어딘가에 구멍이 났다.지난번도 그랬는데 이번에도 나는 몰랐다.

생긴것도 몰랐고, 정확히 어딘지도 모르고, 언제 생겼는지도 모른다.

언제부터 그랬냐는 의사의 물음에 나의 미용실 방문 이력을 꺼내놓으면서 아마도 그 사이 즈음이라고 답했다.




"언니, 여기 또 머리가 빠지고 있는데?"

미용실 원장이자 친한 동생이 내 머리 염색을 위해 머리를 들추다 꺼낸 말이다.


"뭐? 한참 나고 있었는데? 그 자리 아니야?"

 믿을수 없다는듯 내가 묻자, 지난번에 뭉텅 빠졌다가 나고 있는 그 옆이라고 한다. 도통 믿지못하는 나를 거울로 보며 여기저기 구멍을 찾아  내 손가락을 가져가대주니 그제서야 맨들한 두피의 감촉이 느껴진다.

"신경쓰는 일 있었어?"


신경쓰는 일이라면 있긴했다. 글쓰기..아니 책쓰기!

좋아서 글을 쓴다고 생각했고 늦은 나이에 찾은 글쓰기라는 취미에 힘들줄 몰랐는데 막상 일이 되는 글쓰기는 좀 힘이 들었다. 

취미로만 해도 되지만 욕심이 났다는게 맞다. 브런치 작가 의 소개란에  올라오는 '출간작가'라는 레이블을 나도 달고 싶었다.


집중하고 몰입한 시간덕에  출간 작가라는 레이블을 얻었지만 머리카락을 내어줬다.

무슨 '크리스마스 선물'에 나오는 시곗줄과 머릿카락을 바꾸는 것도 아니고, 책과 머릿카락이라니..



의사는 바늘로 여기저기 수십 번찌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아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설명했다.

"자, 두피 밑에 모근이 있죠, 이 모근이 모두 빠져버리는게 원형탈모입니다. 모근이 영양분을 받아야 계속 자라고 유지가 되는데 스트레스도 혈관이 좁아지면 이 모근 부분이 굶어죽는거예요. 아시겠죠?"


참으로 맛깔난 설명이네 생각했다.


몇개월 전 처음 원형탈모가 생겼을때 갔던 병원에서 냅다 수십개 바늘을 난사하더니  "2주뒤에 오세요"라고 했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냥 가면 되나요?"하고 물으니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고 덧붙였던 그 병원 의사..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슨 "따뜻한 아이스아메리카노주세요!"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여보세요. 선생님. 대체 현대 사회 이천이십일년을 살면서 스트레스 없는 삶이 가능키나 한건가요? 하고 묻고 싶었다.

식후3번보다 더 많이 하루에도 꼬박꼬박 영양제처럼 스트레스를 챙겨 받으며 살고 있는데 말이다.


이번 이번 의사는 조금 달랐다. 

"2주마다 한번씩 오세요. 모근이 나도록 주사를 놔서 혈관을 넓힐껀데 제가 넓혀드리는 혈관의 속도보다 스트레스를 받아서 다시 좁아지게 되면 아~무 소용이 없겠지요~"

역시 과학적 근거를 덧붙이니 더 이해가 간다.같은 말이지만  이과계 두뇌라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여졌다.


그리곤 내 눈을 쳐다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사십시요!"


나이가 지긋한 의사쌤의 눈은 웃고 있었다.

무슨 일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젊은 사람이 너무 신경쓰지 말라같은 훈계의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저, 딱 그 한마디였다.


6시 25분, 마지막 환자가 진료실 문밖에 한명 더 있었다. 진료마감이 5분 남은 상황,그 시간까지 환자에게 그런 여유의 말을 해주는 의사는 흔치 않아서 참 낯설었다.


지친 기색없는 표정과  웃음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지금 행복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런 말을 환자에게 건낼수 있는 의사쌤의 마음 여유가 부러웠다.


하고 싶은게 많이 생길수록, 욕심나는게 많을수록, 늘 건강과 여유에게 자꾸 양보를 강요했다.

짧은 기간에 원고를 완성할 수 있는 지 물었고, 무리가 될 줄 알면서도 그러겠노라 말했다.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지만 몸은 사실 힘이 들었나보다.


진짜 중요한 걸 놓치지말자고 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음을 몸이 말해주고 있었다.

나 지금 행복한데 몸은 힘들다고 말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내가 무언가에 취해있는가 싶었다.



그러니까, 행복하게..


묵직하게 그 말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귀기울이자, 그리고 듣자.

여유가 있어야 행복을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다.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처럼 스트레스 없는 삶은 공존할 수 없지만 내게 온 행복을 온 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여유의 시간이 깃든 삶을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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