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사랑에 빠지는 편

by 맵다 쓰다
책을 살 때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나?


머리 좋은 친구 A와 한번 꽂히면 무섭게 파고드는 B는 목차부터 차근히 살핀다고 했다. 실용서를 좋아하는 C는 분명한 자기 취향의 책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는 내용도 안 보고 사는 사람도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때 똑똑하고 이성적인 D가 한마디 거든다.

"나는 표지만 보고도 사는데? 다들 안 그래?"


엄청난 발언에 놀란 목차 검증파들이 내게 묻는다.



" 응, 나도 표지만 보고도 잘 사 "

다들 의외라는 반응이었다.내가 표지파라니!!치밀하게 따져보고 살 것 같은 이미지라나..


책을 고르는 취향도 성격별로 유추하면 얼추 맞을까?

나는 언제 적부터 표지만 보고 고르게 되었을까? 기억나지 않는 시작과 이유를 생각해보려고 애쓴다.

약간은 대충 하는 성미가 물건을 고를 때도 발동하는 걸까?

아닌데..노트북을 살때는 그리도 따지고 샀었는데...

예쁜 것에 약해서 표지가 예쁘면 이성이 마비되는 걸까?

그러기엔 실용서 애호가라 뻘건 명조체 제목이 박힌 자기계발서도 잘 사온다.


이유는 설명할 수 없지만 때론 운명처럼 위로와 도움을 주는 책을 만나기도 하고 새 책처럼 남기는 선택 실패작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잘 생각해보면 취향은 오프라인 서점에서 주로 영향을 끼친다.

온라인은 한정적인 표지사진, 내용만 공개되니까 서평, 목차를 아무래도 더 보게 되는 것 같다.

그나마 내 책을 출간하게 되면서는 목차자체 에 관심이 가서 살펴본다. 하지만 이 작가는 어떻게 목차를 구성했을까?하는 작가의 호기심이 더 크다.





아이 책을 보러 서점에 들렀다.아동과 학습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위엄을 뽑내는 베스트셀러 코너가 붙잡는다. 누군가는 베스트셀러구역에 전시된 책들은 일부러 외면한다는데 나에게는 그정도 작가로의 주관은 없는지 꼭 베스트셀러를 살펴본다. 너희는 다 읽고 나는 모르는 것은 싫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본력과 마케팅으로 만들어지는 그들만의 리그일지라도 그 위에 떡하니 오래도록 서있는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을 품은 작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혼자하는 서점나들이도 아닌데 동과 서로 사라지는 아이들을 챙기고 필요한 책까지 사서 돌아와야한다. 빠르게 트렌드를 보고 큐레이션 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보기엔 그 자리가 딱이다.


그냥 보기만 하는 건데 뭐 하고 일단 변호를 하면서 섰다.

'보는 건 죄가 아니라고, 서점에 왔으면 책은 한번 펼쳐줘야지...'하는 거짓말을 속으로 했다.

요즘 나는 입만 열면 거짓말이다. 늙으면 죽어야지, 남지도 않는 장사라는 말처럼 책은 이제 그만사야지를 외친다.

못 읽고 쌓아둔 책들은 비상시 먹을 햇반처럼 든든하게 구석을 지키고 있고 가입만 하면 수 만권의 책을 다 읽을 것 같은(읽는 이 절대로 아니다) 구독서비스의 늪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읽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읽을 것 같은 욕심을 부리는 책 소비를 줄여보기로 해놓고 나도 모르게 이쑤시게를 받아드는 시식코너앞 처럼 그 자리에 멈췄다.


선택의 기준은........앞서 밝힌대로 없다.

그냥 느낌을 전하는 책 한권을 집었다.

한 손에 쏘옥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신상 클러치를 들어보듯 그립감을 느껴본다.

'분명 비규격 판형이네.. 요즘 에세이는 이렇게 작게 많이 나오더라구...' 들리지도 않을 혼잣말을 해가면서 말이다.


저자 소개란에 출간 저서가 몇권인지 살펴본다.(출간후에 생긴 나의 귀여운 습관이라고 해두자) 그리곤 프롤로그로 직행한다.


........

책을 팔기로 했으니 당연히 팔아야 하는 것만 같아서 거절도 못했다.
내가 안절부절못하는 반면 손님은 당당하게 내 책을 원했다.그 기세에 눌려 더 팔아야(?) 했는지도 모른다.....


< 프롤로그 中>

'하......귀...귀엽다..'

이렇게 쓸떼없는 부분에 귀여움을 느끼는 편이다.

책방에서 책을 팔기 싫어하는 서점주인장이 귀엽고, 밑줄친 책을 팔아서 밑줄 서점이라고 이름지은 작가의 위트가 귀엽다.귀여운데 너무 참신한 발상에 질투도 살짝 난다.


.......

대책을 세워야 했다. 손님이 없는 텅 빈 책방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잠긴 나는 불현듯 글을 남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독후감을 남기는 게 아니라 책을 읽다가 밑줄 그은 문장에서 시작된 나의 이야기를 하나씩 남겨놓는다면 훗날 그 책을 손님이 사가도 덜 서운할 것 같았다



< 프롤로그 中>.

'허허..나돈데?'

책을 읽다말고 이 느낌을 하나라도 남겨놔야지! 악상이 떠오르듯 노트북을 여는 내 모습과 동일시되자 작가와 급 소울메이트가 된다.(물론 이유미 작가는 나를 전혀 알지못한다)

'아..사야겠구나'


그렇게 고작 25줄을 읽고 결정했다.

아니 '결정했다'라는 표현보다는 '결정하도록 만들어졌다'가 맞다.




또,,금방 사랑에 빠졌다.


9년째 쓰고 있는 뚜껑이 깨진 전기밥솥은 몇 달째 새것을 살지 말지 고민해대면서 25줄, 책을 집어든지 3분 만에 "K.O패" 다.

적어도 하루 두번이상 사용하고 없으면 안되는 물건도(밥솥) 아니면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책은 이토록 빠르게 결정한다.


각이 뇌로 감각을 전달하는 속도만큼 빠르게 결정이 난다. 이정도면 그냥, 금사빠다.

성격적인 특성탓인지, 무드에 약한 탓인지 도무지 알수없는 책선택의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금방 사랑에 빠지는데 이유를 설명할 수 있으랴.

잘다듬은 손톱이 잠시 눈에 들어와 설레였을지도 모르고, 나는듯 마는 듯한 시트러스 향이 나는 향수를 맡아서 일지도 모른다.

너무 잘해주면 바람둥이 같아서, 너무 똑똑하면 내 무식이 탄로 날까봐, 너무 완벽하면 양다리일까봐 철벽을 치는 이유도 다양하다.

키가 크면 유전자가 좋아서, 잘 웃으면 순수해 보여서, 차가 좋으면 돈이 많아서, 돈이 없으면 괜히 나 같아서

좋은 이유도 갖가지다.



이유미 작가님은 얼마나 문장을 편애하면 책제목도 '편애하는 문장들'이라는데, 나도 금사빠 책 선택 방식을 당당히 편애 해야겠다.

이제 남자한테 금사빠도 못하는 법적인 신분인데 책이라도 금방 사랑에 빠지겠노라!( 하물며 이건 합법적인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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