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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Nov 14. 2023

찐친 감별법

마흔이 가까워서 알게 된  친구를 만나고 왔다. 다양한 관계를 맺으면 40년을 넘겨보니 지금 좋았던 친구와 영원히 좋을 수도 없고, 아무 이유 없이 소원해지는 관계가 되기도 한다.  역시 친구는 어릴 적 친구가 제일이고 사회에서 만난 친구는 마음 나누는 관계까지 가기는 어렵다고들 하는데  누구에게나 통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내 경우는 어린 시절 친구와의 사이도 좋고, 내 생활반경에 또래 엄마들과도 잘 지내는 편이다. 별 이유는 없는데 만나면 반가운 동기 친구들도, 열정페이로 함께 소진되던 직장인 친구들도 있지만 새로운 친구를 만드는 일도 주저하지 않는 편이다.


이 친구들은 넓은 의미에서 관심사가 비슷하고 추구하는 가치관이 닮아있다. 동호회처럼 어느 하나를 좋아한다기보다는 무엇이든 호기심 가지고 성장욕구가 강한 주변에는 잘 없는 사람들이다. 현실에서는 "그냥 편하게 살지 무엇을 그렇게 하냐?(혹은 배우냐?) 같은 말을 한 번쯤은 들었기에 마음껏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관계 속에서 서로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냥 수다가 재밌었거나..

일명 온라인 친구로 만났던 관계에서 오프라인까지 이어지고 다시 온라인으로 연대를 이어가고 비정기적으로 오프라인으로 의기투합하면서 시간을 쌓았다. 그 세월이 길고 진해서 자연스레 서로의 대소사도 함께 겪어가면서  민낯이 두렵지 않은 관계로 발전했다.


기본적으로 유쾌함이 베이스에 깔린 친구들이라 심각한 주제부터 낙엽처럼 가벼운 이슈까지 늘 종회무진 이야기가 넘친다. 온라인으로도 충분히 배꼽이 빠지게 재밌는 관계이지만  전국각지에 근거지를 두고 있어서 그 지역에 갈 일이 있으면 온라인 친구를 웬만하면 실물영접하는 시간을 가진다. 가상화폐도 출금해야 내 돈인 것처럼  그렇게라도 확인을 해야 사이버친구가 아니라는 증거라도 되는 양 아등바등 없는 틈도 쪼개어 얼굴도장이라도 찍는 편이다.

사진: Unsplash의Andrew Moca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50분.

내가 있는 부산에서 강의를 한 친구가 서울로 돌아가는 열차 시까지 남은 시간이다. 부산에 근거지를 둔 친구 넷이 미리 대기했다. 모이자마자 일단 알람부터 맞추고 대화를 시작한다. 기차역에서 무한 수다에 빠졌다가 열차를 놓칠 뻔한 적이 여러 번이기 때문이다.  진행하는 사람이 없어도 알아서 자기 분량을 지키면서 대화 총량을 분배하는 그녀들을 보면 어디서 이렇게 선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 모였나 싶다.(쓰면서 생각해 보니 내 이야기를 제일 많이 한 것 같긴 하다)


남은 10분도 알차게 써보려고 플랫폼에 내려가서 격하게 배웅을 했다. 사회적 지위는 없지만 체면은 있을 법한 나이의 여성들이 끝없이 열차유리에 인사를 한다. 열차안에 근엄 하게  있던  친구 앞 좌석에  아저씨가 우리 모습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그 모습이 너무나 환해서 마치 구면인듯한 착각이 든다. 우릴 보고 활짝 웃어주는 모습에 예의 바른 친구 하나는 그 이름 모를 아저씨께도 꾸벅 인사를 했더랬다.(친구 중에서 엉뚱함 포지션을 맡고 있다) 아저씨 덕에 우리의 과한 에너지 수위를 확인하고 열렬한 배웅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다소 과한 인사였지만 보는 사람이 미간을 찌뿌린 극성이나 주책이 아니라 해맑음으로 비춰졌겠지하는 자기편향적 생각을 해본다.


헤어지는 길 다시 사이버친구로 복귀한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길 단톡방에  저마다의 만남 소회를 남긴다.

덕분에 호랑이 기운이 솟아났다거나 감기가 오려고 했는데 오히려 감기가 낫은 것 같다거나 봐도 봐도 좋다거나.. 거의 먹기만 하면 관절염환자도 뛰어다닌다는 약 광고 같은 말 일색이다.  나 역시 한마디 더 보탠다.

"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용기가 솟아난다!" 낯 간지러운 말이지만 빈말이 아니었다.


사실 내가 딱 이런 상태였다.



무모하지 못했다면 못했을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운전뿐 아니라,
직업도 취미도 인간관계도 다 무모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물이다...

나의 모든 도전은 다 무모했고, 무모함이 곧 도전이었다.
갈수록 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지는 요즘의 내가 그래서 참 별로다.


손화신 작가의 책, [이럴 줄 알았으면 말이나 타고 다닐걸]에 나오는 구절이다.



갈수록 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아져서 내가 별로로 느껴지는 시간이 잦아지는 요즘이었다.

보이는 것, 아는 것들이 많아져서인지 오히려 하룻강아지시절보다 뭔가 시도하거나 도전하는 일이 드물다. 아니 솔직하게 조금 두렵기도 하다. 꽤나 길게 그런 마음 상태였는데 고작 50분만에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주저되는 일들을 단숨에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으로 충전이 되었다.


시간 맞춰 나가느라 잘 차려입지도 않고 집 편의점 가듯 다녀왔다. 무엇을 입고 갈까 같은 여자들의 흔한 고민조차 안했구나 깨달았다. 그러다가 새로운 사업 때문에 고민 많던 친구의 해진 입가에 약을 좀 바르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가 오늘따라 추운데 얇게 입고 온 친구는 가면서 춥진 않았을까  떠올랐다. 나보다 먼저 지하철에서 내리는 친구의 뒷모습을 너무 아쉬워했나 싶어서 슬쩍 웃었다가, 먼 길 떠난 친구가 가는 동안 꿀잠 자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두운 밤길을 따라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진짜 친구는 만나러 갈 때보다 돌아올 때 내 마음이 알려주는 것 같다. 만나러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충만한지 아닌지, 잘 나가는 누구와 나를 비교하며 스스로를 쪼그라 들게 하는지, 잘 차려입고 다녀오면서  피곤함만 느끼는지, 무엇보다 그들이 더 좋은 곳으로 한발짝 가길 나도 모르게 기도하고 있는지 말이다.


무모하다는 앞뒤를 잘 헤아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5년 전, 친구가 되자고 말하던 그때 좋은 친구가 될지 아닐지 재거나, 앞 뒤 가리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그 무모함 덕분에 더 무모해질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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