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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Dec 13. 2023

산타는 순록대신 로켓배송을 타고 왔다

"아니? 벌써 산타할아버지한테 편지를 썼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트리 옆 편지를 본 남편이  물으니 아이들이 즉답을 한다.


" 응, 엄마가 산타할아버지가 너무 많은 아이들 선물을 준비해야 하니 미리 써야 한데"








산타에게 쓴 편지라고 해야 할지 선물을 접수한 접수장이라고 해야 할지 애매하지만 그림까지 곱게 그려서 트리옆에 놓아둔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저.. 리틀미미 가방스쿨 사주(아니 지우고)
만들어 주세요!



만들어주세요! 란 글자 아래 지우개로 지운 사주...(세요)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어느 영화에서 처럼 선물을 만드는 기계를 상상했을 것 같다.. 1000명이 넘는 어린이에게 선물을 주는지 궁금하고  산타 할아버지는 할머니와 사는지도  궁금한 여덟 살이다.

마지막에   한번 더 확인하는 말에 웃음이 터진다.


근데요. 선물 주시는 거죠?


너희는 무조건 선물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냐는 아빠의 물음에 당연히 받는 거 아니야? 하는 눈으로 쳐다봤었는데 내심 진짜 안 주면 어쩌지 일말의 불안이 숨어있었던 것 같다.

착한 일 했냐는 아빠의 추궁에 자신 있게 그럼~하고 대답해고서  친구에게 지우개를 빌려주지 않았던 일을 떠올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두 아이의 편지 속에는 성격도 담겨있다.

예의 바른 첫째는 인사로 시작해서 인사로 끝나고, 다정한 둘째는 겨울에 활동하는 산타의 감기를 걱정한다.(혼자 계셔 적적하실까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했을까?)



사실, 이 편지 쓰기의 복병은 첫째였다.

엄마, 진짜 산타 있는 거 맞지? 하면서 합리적 의심을 하기 시작한 10살이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에 분명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누구네 아빠가 산타와 사진을 찍었데 하면서 쑥덕거리는 걸 봤는데 그사이 뭔가를 들은 게 분명하다.


그리곤 나를 당황케 했던 질문을 했다.

친구가 그러는데 자기 엄마가 선물을 쿠팡으로 로켓배송시킨 걸 발견했데!


...


아뿔싸.. 배송과 안전한 곳에 선물을 보관하는 건, 전 세계의 어린이를 위해서 부모들이 반드시 성공해야 할 과업인데 발각되었나 보다.

이럴 때 당황하면 아이는 의심이 확증으로 바뀐다.

 

그건 친구가 산타에게 선물을 못 받게 되어서
그럼 친구가 너무 속상하니까 친구 엄마가 몰래 시켜주신 게 아닐까?

착한 일을 안 했다거나...



착한 일에 산타선물을 엮어서 말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사람이 다급하면 또 이렇게 생각과 말이 달리 나오기도 한다. 긴장한 걸 들키지 않으려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게 입으로 쑥 나와버렸다.

그 설명에 수긍하는 듯 하던 딸이 그 친구는 나쁜 행동 하지 않는다며 다시  변론을 했다.

우리는 몰라도 집에선 뭔가 엄마 말을 안들었다거나
아 참. 학원 가기 싫다고 더 놀고 싶다고 해서 혼난 적 있지 않았니?




여기까지 말하아이 완벽히 설득 되었지만 변명이 참 씁쓸하다.

유난히 양치로 실랑이하던 둘째의 네 살 무렵  양치질 안 하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 안주신다고 나도 협박을 했다.

그 당시 또래 부모들이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마법의 문장이 통하는 시기라고 우스개 말을 하기도 했다.

12월에 통하는 강력한 마법의 한 문장이 있었으니까.

너, 그럼 산타할아버지가 콩순이 인형 안 주셔!


 

나도  착한 일을 해야지 선물을 준다는 협박성 멘트를 했긴 하지만 산타선물의 전제 조건이 착한 아이라는 게 찜찜하다.  그땐 하루하루 다급한 육아시기라서 어쩔 수 없었다 변명을 해보지만 마음속으로 착한 일이라고 꼬집는 일이 부모의 편리에서 온 꼼수라는 걸 나는 인정한다.


알아서 숙제도 잘하고 동생과 사이좋게 지내고, 밥도 잘 먹고 양치도 잘하면 착한 걸까?

착하다는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하다'는 의미를 가진다.

양치질을 하기 싫어 안 하는 네 살은 마음씨가 바르지 않은 건가? 그렇게 물으면 나는 시선을 피하거나 우물거릴 게 뻔하다.


마음을 여는 한 문장도 아니고  문제(라고 생각하는) 행동을 멈추게 하는 마음을 주춤하게 하는 문장이라니..

시간이 지났지만 다시 한번 반성한다.


이제 의미도 수혜자도 없는 협박 멘트 대신  플랜 B를 연구하는 부모가 되어야겠다.

만약 선물이 발각되었을 때, 친구에게서 산타존재유무를 듣고 왔을 때 무슨 말로 동심을 보존해야할까?

산타할아버지가 무거운 짐으로 허리디스크가 생겨서 배송만 맡겼다거나 택배아저씨와 협약을 맺었다거나, 비행기가(아니 순록이) 파업을 했다거나...플랜B를 떠올리다보니 어느 새 동심으로 물든다.



 동심 파괴의 원조는 이 노래가 아닐까 싶다.




울면 안 돼 (원제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You better watch out

조심하는 게 좋을 거예요.


You better not cry

울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You better not pout

토라지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Im telling you why

내가 당신에게 이유를 말해 줄게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산타클로스가 마을로 오고 있대요.


Making a list and checking it twice

목록을 만들고 두 번씩 그걸 체크해요.


Gonna find out whos naughty and nice.

누가 나쁘고 누가 좋은지 알아낼 거예요.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산타클로스가 마을로 오고 있대요.


He sees you when youre sleeping

그는 당신이 자고 있을 때 당신을 만나러 와요.


And he knows when youre awake

그는 당신이 깨어있을 때를 알아요.


He knows if youve been bad or good

그는 당신이 나쁜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알아요.


우리나라에는 '울면 안 돼"로 익숙한 이 노래는 무려 1934년 11 월에 미국에서 Eddie Cantor이란 사람이 처음 불렀고 매년 팝 가수들을 통해서 리메이크 된다. 나처럼 생각하는 어른은 이 노래로 세뇌 그리고 조련당한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들이다.


한 해를 잘 보내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게 될 거라는 초기 의도야 좋았겠지만 목록을 두 번씩 체크한다는 원곡 가사 속 철저함이 놀랍다.


이제는 착한 게 착한 게 아니고, 아이가 부모의 전유물도 아닌 시대이다.

무엇보다 착한 아이 컴플렉스로 자란 어른이 그다지 행복하지 못한 것 같다.(내가 그러하다)

의도와 다르게 오용, 남용하는 건 부모이긴 하지만 나쁘고 좋고로 선물을 못 받는 대신

차라리 아이다운 행동을 하거나 존재 자체가 귀하니  선물을 받는다고 하면 좋겠다.

(어린이날과 겹쳐서 선물을 한번만 받아도 엄마입장에서 환영이긴 하다)


아직까지 산타존재를 성공리에 지키고 있는 2023년 12월 다짐해 본다.


" 얘들아, 엄마는  착한 일에 크리스 마스 선물을 볼모로 잡아두지 않을게.

철저하지 못한  enfp엄마라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 번씩 확인할 능력이 안 되는 덕이라고 해 두자.

대신 우리 집 산타는 로켓대신 반드시 순록을 타고 온다고 믿게 몇 년은 더 노력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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