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을 묻힌다- 거품을 낸다 - 충분히 헹군다- 말린다
머리카락을 감는 일.
머리를 처음 감는 사람을 보면 이 익숙하고도 쉬운 일이 얼마나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일인지 깨닫게 된다.
아이에게 머리 감기와 샤워 독립을 연습시킬 때 무렵이었다. 분명히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귀 옆에는 거품이 묻어있는 일은 다반사이고 희미한 땀냄새가 두피를 타고 그대로 전해지기도 했다.
8살과 6살, 나이와 상관없이 처음 하는 일은 둘 다 어설펐다. 머리카락 겉면만 물을 대충 뿌리니 속까지 젖어들지 못해 거품이 제대로 나지 못했다. 감는 건지 마는 건지 못 본 척, 안 본 눈으로 그 과정을 함께 지나갈 수밖에.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자매라서 눈에 보이는 거품은 서로 이야기를 해주면서 헹구는 법을 터득해가기도 했다는 정도이다. 샤워 독립을 시킨 첫 해 겨울에는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아이들 머리도 비듬이 생긴다는 걸 알았다.
고작 4단계로 이뤄지는 이 과정은 아이들에겐 고도의 숙련을 거쳐야 익숙해진다. 일다 물은 이마까지 묻힐지 구레나룻까지 묻힐지 알아야 한다. 거품은 한두 번이면 충분하다는데 비비다 보면 머리카락 끝으로 가지도 않았는데 거품이 사라져 버리고 만다. 충분히 헹구는 것은 더 어렵다. 내 머리가 보이지 않는데 거품이 있는지 손의 감각만으로 알아내야 한다. 충분히가 차라리 3번. 2번 숫자로 정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애매한 기준이다.
말리는 일은 어디 쉬운가. 머리 위부터 말릴지, 아래부터 말릴지. 뜨거운 바람? 아님 차가운 바람이 좋을지. 몇 분 정도 말리는 건지 알아야 할 것이 많다. 하긴 어른을 기준으로 일 년에 360번만 감았다 쳐도 나이에 10을 빼고 곱해보면 40대라면 1만 번 정도 머리를 감아본 것이다. 몇 번 해본다고 잘할 수 없는 건 당연하다.
"머리를 감을 때 물을 충분히 묻히고 두피랑 귀 옆에도 손가락, 아니 손톱 말고 손가락 끝으로 골고루 비벼야 해. 충분히 거품이 나고 머리 전체를 다 감고 나면 머리카락 끝도 따로 비벼 줘야지. 자 이제 헹구면 되거든. 거품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여러 번 헹궈야지. 귀 옆에 머리 뒷 쪽도 손으로 만져보면 느낌이 올 거야."
흡사 프로 래퍼가 된 것처럼 주의사항을 쏟아낸다.
하루는 아이가 스스로 하고 다음날은 엄마의 도움으로, 그러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도와주기, 이렇게 횟수를 조절하면서 스스로 씻기 독립을 무사히 마쳤다. 정확히는 몰라도 수개월이 걸렸고 둘째는 이른 나이였기 때문에 다시 내 손을 빌렸다 스스로 하다 반복을 하다 8 살 이전에 독립적으로 씻는 어린이가 될 수 있었다.
스스로 씻는 일도 그렇지만 늦여름과 초가을, 한여름과 겨울 어떤 옷을 입는 게 편한지, 비 오는 날 장화를 신을 때는 왜 목이 긴 양말을 챙겨야 하는지, 머리를 말릴 때 드라이기 뒷면에 머리카락이 들어가지 않도록 거리를 유지하는 것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일을 알려줘야 한다.
이렇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사명을 지고 간다. 조심해라.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면 더 편하다 등....... 엄마의 잔소리를 일상의 BGM(배경음악)으로 깔고 아이들은 자란다. 일상에 흐르는 줄도 모르게 익숙해진 잔소리 BGM을 갑자기 자각하는 순간은 잔소리의 내용이 현실화되는 때이다.
다섯 손가락 5월 22일 목요일
우리 집엔 멜로라는 냥이가 있다. 밤에 침대방 문을 열어놓으면 멜로가 들어와 침대에 똥을 싼다. 그래서 우린 방문을 닫는다. 굳게 닫는다. 어젯밤 나는 침대방에서 나올려했다. 멜로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빨리 문을 닫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쿵" 방문을 닫았다.
" 아야!" 비명이 나왔다. 눈물도 나왔다. 방문에 손이 찡겼다. 귀속에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 왜! 왜! 왜! 왜 그래?"
난 다시 문을 열었다. 너무 아파 눈물이 샘터같이 찰찰 출출 나왔다. 침대방에 들어왔다. 아빠가 달려왔다.
"왜 그래?"라고 소리치며.
난 엄마와 아빠에게 오른손을 내밀었다. 엄마가
" 어머! 어떻게 아프겠다"라고 했다.
다음날 내 손톱은 보라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목요일 하루동안 많은 글씨를 쓰고 느꼈다.
모든 다섯 손가락은 소중하다.
누구나 한 두번쯤 장난을 치다가 아니면 스스로 한 번쯤 문에 손이 끼이는 사고를 당한다. 보통 문을 여닫는 장난을 칠 때 그러다가 문에 손이 끼이면 큰일 난다는 말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고는 늘 예상치 못하게 일어난다. 평소처럼 잠자리에 들기 전 물을 마시고 화장실에 다녀왔다. 그렇게 평화롭게 하루를 마무리하다 사고가 일어났다. 급하게 문을 닫다가 자기 손을 미처 빼지 못하고 방문이 닫혔다. 너무 아파서 악 하는 비명은 1~2초의 정적이 흐르고야 났다. 어떻게 해 줄 수도 없어서 안타까워서 발만 동동 굴렀다. 손가락을 붙들고 옆으로 잠든 모습을 보니 베개가 흥건하게 눈물을 흘리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병원에 갔다가 뼈에는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하고 1교시쯤 학교에 보냈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에게 밥은 어떻게 먹었냐고 물었더니 숟가락으로 잘 먹었다고 했고 글씨 쓰는 게 힘이 들었다고 했다. 그날 일기에는 어떤 잔소리로도 얻을 수 없는 깨달음이 남겨져 있었다. 역시 백문이불여일견!역시 열 마디 말보다 한번의 경험으로 조심성도 깨달음도 얻는다. 이제 문을 닫을 때마다 저절로 조심성이 발동될 것이다. 그리고 한 달 정도 후 다행히 손톱은 예쁘게 자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