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바느질로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내게 사람들의 친절한 맞장구 중 가장 지분이 높은 말이다.
"아... 십자수... 예전에 참 많이 했죠.. 그런데 저는 다른 건 다 좋은데 십자수는 싫더라고요. 정해진 숫자에 맞춰서 색을 맞춰 수를 놓는 게 약간 적성에 안 맞더라고요"
저건 무슨 소리지?
분명히 실과 바늘로 만드는 핸드메이드가 취미라고 해놓고 그게 뭐가 다른데?
하는 눈빛에 나에게 박힌다.
밀레니엄 버그, Y2K가 되면 어떻게 될까 걱정하던 시절, 차종을 막론하고 대시보드 위에 살포시 놓여있던 '연락처 십자수 쿠션'이 들불처럼 번지던 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의아해한다.
그런데 진짜 그랬다.
분명히 실과 바늘, 천이 들어가서 무언가 만들어내는 기쁨은 비슷한데 정해진 틀대로만 해야 하는 것은 뭔가 극적인 재미가 없었다. 박았다 뜯었다를 수십 번 하고 울퉁불퉁 박음질이 이상하게 되어도 그냥 머릿속으로 상상해서 이런 걸 만들어야지 하고 잡지 속에서 봤던 비슷한 모양을 흉내 내어서 소품을 만들거나, 옷을 리폼하는 편이 훨씬 재밌었다.
"뭐 먹을래?" 하면 길에서 삼각 대형으로 둘러 서서 물에 술 탄 듯, 술에 물 탄 듯 말을 못 하면서 이상하게 이런 취향을 말할 때는 그 한마디를 꼭 붙였던 것 같다.
생각해보니 늘 그랬다.
갑자기 길을 걸어가다 이때가 생각이 났다.
난 왜? 이런 질문에는 그토록 분명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흥미를 느끼는 것을 하나 둘 하다 보니 이상하게 왜 이건 비슷한데 재미가 없지? 할 때마다 나도 궁금했고 마침내 '나는 시키는 대로 하는 것에는 재미를 덜 느끼는구나!' 그렇게 나의 명확한 취미 취향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왜 이상하게 십자수는 재미가 없지?'하고 계속 의문을 품었으니까...
사실, 난 요즘 취향을 수집하고 있다.
향수를 수집하거나 세계여행 기념 마그네틱을 수집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 의. 취. 향.
'나는 왜 이렇게 뉴트럴 nutral 인간 같을까?'
꽤 긴 시간을 나로 살아왔는데 딱히 나는 이런 색의 사람이야!라고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고, 가지고 있는 재능도 뭐하나 특출 난 것도 없이 그저 그랬다.
정치성향도 중도, 키도 중간, 하다못해 태어난 달도 일 년 중 가운데..
모든 어중간한 나 자신이 싫었다.
분명하고 강단 있어 보이는 극단의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부러워 보일 때가 있었다.
그들은 최소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을 선택하고 몰입해보면서 자기만의 취향을 만들어간 것처럼 보였다.
결혼해서 진짜 부부가 되려면 신혼시절 치열하게 싸워서 맞추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데 나는 태어나서 진짜 내가 되기 위해 나와 치열하게 부딪혀봤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대답은? '아니오'
그래서 아직 진짜 나를 못 만난 걸까?
그저 겁을 내면서 시간의 흐름 뒤에 나를 숨긴 채 어쩌다 보니 익숙해지는 것들로 나를 채운 세월만이 내게 쌓인 것 같았다.
취향이 오늘부터 만들 거야! 하고 작심한다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묻혀있는 나의 취향을 하나씩 발굴해보기로 했다.
세상에 진짜 무색무취의 사람이 있을까?
누구든 다르고 각자만의 향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의 향에 이름을 붙이지 않았을 뿐이다.
향기인지 냄새인지 조차 정의하지 않았다.
무의식 중에 내가 하는 모든 것들은 나의 취향 일지 모른다.
'이건 진짜 아무 노래가 아닌데?'
지코의 '아무 노래'를 듣다가 그런 생각이 났다.
템포가 빠른 아무 노래, 집중하기 좋은 아무 노래, 비트 속에 빼곡한 랩 가사가 박혀있는 아무 노래..
내가 들었을 때 흥이 나는 그 아무 노래, 지금 상황과 맞다고 판단되는 아무 노래..
그 아무개 중 아무 노래를 틀으라는 거지...
"뭐가 이리 다운돼있어? "하고 아무 노래 중에 군밤타령을 틀고 "Why not? 아무 노래라면서?"
하고 어깨를 으쓱하며 난감한 표정을 짓지 않으려면 그 '아무'의 문맥 파악 정도는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