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즐럿 고디바가 좋아

by 맵다 쓰다

얼마 전 여행에서 돌아온 친구가 선물을 내밀었다.


"특별히 살만한 것이 없어 그냥 이걸로 하나씩 사 왔어."


나에게 초콜릿 한 상자씩을 내민다.

고급스러운 패키지의 고디바 초콜릿을 받아 들고는


"뭘.. 이런 거까지 챙기냐! 아무튼 고맙다"


생각지도 못한 선물에 미안해졌다.


나중에 도착한 친구에게 똑같이 초콜릿 한 상자를 내밀었고 같이 미안한 표정으로 받아 든 다른 친구가 내가 받아 옆에 둔 초콜릿을 보고 말을 한다.


"어? 네 거 줘봐! 이거 두 개 종류가 다른 거네?"


자세히 보니 색깔이 약간 다르다.

하나는 헤이즐넛, 하나는 아몬드..라고 적혀있다.


어떤 걸 고를까 하는 표정을 짓길래, 나는

"나는 헤이즐럿 좋은데?"라고 먼저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친구는 개운하지 못한 표정으로 "뭐.. 나도 아몬드도 괜찮아"하더니

이내 "근데 너 의외네? 엄청 단호하네 말하네"라고 말한다.


나는 살짝 무안해진 마음에

"너 헤이즐넛 좋아해? 바꿀까? "

다시 물어보니 내키지 않다고 했다.


수십 년을 봐온 친구라 더 이런 내 모습이 어색했나 보다.

하긴 나도 내가 어색하다.

내가 먼저 받아서, 내 거라서 아까운 그런 사이가 아닐 정도로 우리는 오랜 기간 봐온 가까운 친구다.


예전이었다면 나는 "어? 맞네? 두 가지 맛이네?""하고 골라보고 싶은 친구의 마음이 느껴져서 난" 아무거나 괜찮아"라고 했을 것 같다.

물론 친구도 넌 어떤 게 더 좋냐고 다시 물어봤겠지만 내가 앞뒤 없이 "난 헤이즐넛 좋은데?"라고 말한 게 의외였던 것 같다.


거의 반년만에 다시 만났는데 난 그 사이 꽤 달라졌나 보다.




헤이즐넛은 좋고 아몬드가 싫어서가 아니다.

뭐,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니고 사실 아무거나 괜찮기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실은 난 최근에 이런 연습을 하고 있다.


"난 내가 받은 게 맘에 들어"

"난 일정이 있어서 못가, 빠질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이제 내 삶에서 "아무거나"란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내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기에도 삶은 너무 짧고 시간은 너무나 빨리 흐르는 게 느껴졌다.

취향도 주관도 없는 삶은 이제 벗어나고 싶었다.


좋고 싫은 걸 남의 눈치 안 보고 말하는 사람이 부럽다.

만날 때마다 "오늘은 매운 게 먹고 싶어!"라고 말하는 당당함이 어떻게 나오는 건지..


그렇게 살다 보니 점점 내가 없어지는 것 같았다.

나와 주변 사람이라는 저울에서 언제나 나는 무게를 친구나 가족에게 먼저 두었다.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 스스로..


그리고, 그게 나도 남도 당연해지는 것 같다.

그들이 나를 막 대하거나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나는 사람들의 관계에서 꽤나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이런 성격 덕에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된 공도 클 것 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보니 나라는 사람이 조금 안쓰러워졌다.

매번 내 마음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선택을 한번, 두 번... 그리고 여러 번 해오면서

진짜 나는 아무거나 해도 되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나도 한 번쯤 "쟤, 4차원이야", "미친놈이야", "쟤 건드리면 안 돼" 하는 내가 가지지 못한 색깔을 가져보고 싶었다.

그런 갈증이 내 안에 있다는 건 그들이 부럽다는 것 같다.


그들은 자기만 아는 것 같지만 사실 자기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 보인다.

나는 이제 배려, 이해란 말을 좀 벗어나고 싶다.

이기적인 사람이 되겠다는 말이 아니라, 아주 작은 생각이라도 진짜 그때 드는 생각을 그 자리에서 바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내가 행복하겠다고 느껴졌다.


"둘 다 좋지만 헤이즐넛이 조금 더 좋아!"


이 별거 아닌 말을 해도 의외가 아닌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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