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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Feb 10. 2020

죽지도 않고 또 온 '꾸안꾸'



난 요즘 십 대, 이십 대가 하는 입술 화장을 보면 가끔, 아니 자주 놀란다.

극강의 글래머러스한 입술은 화장으로 만든 건지 필러로 채운 건지는 몰라도 볼 때마다 '안젤리나 졸리'보다는 '달려라 하니'에서 홍두깨 선생님을 좋아하던 고은애 씨가 연상된다.


당최, 저 예쁜 입술을 저렇게 과장되게 해야 하나.... 립밤만 발라도 이쁜 나이인데...

자연스러운 게 최고인데.... 뒷방 늙은이 같은 생각을 한다.



어느 세대나  유행이라 불리며 취향을 나타내는 과장된 표현은 있었다.

입술을 자줏빛으로 테두리를 치고 그 안을 색칠공부 칠하듯 채워 넣는 입술부터 방금 튀김을 서너 개 집어먹은 글로시한 입술을 넘어서 도장 찍다 묻은 인주를 모르고 입술에 문지르면 나올법한 새빨간 입술까지...


그런 격동의 유행 굴곡에서도 죽지도 않고 또 온 각설이처럼 매년 "내추럴한 스타일"은 언제나 유행의 옆에 있는 듯 없는 듯 붙어서 다시 돌아온다.


"꾸안꾸"

꾸미지 않은 듯 꾸민 걸 뜻하는 말이란다.


참.. 말도 잘 만들어내는 세상이다.

말이야 지금 만든 신조어지만 예전에도 내추럴한 스타일, 투명화장이란 말로 표현되던 거니까

과거에도 현재에도, 어느 시대에도 살아남는 진정한 스테디 스타일인가 보다.


그런데 그 "꾸안꾸"란 말 안에 예전의 자연스러운 스타일과는 다른 뭔가가 보였다.

애써서 꾸몄지만 애쓴 티를 내고 싶지 않다는 말에 살짝 느껴지는 여우꼬리 같은 어감이  참 매력 있다.


투명화장의 자연스럽게 화장하는 법과 비슷하지만

꾸안꾸는 애썼지만 원래 그런 듯 보여준다! 하지만 이거 꾸민 거 맞아!

쿨하게 인정하면서 이건 하나의 우리의 스타일이야!라고 정의하는 그들의 당당함이 멋지다.



막상  좀 신경 쓰고 나섰는데 "오늘, 좋은 데 가시나 봐요?"하고 누군가 아는 척하면 칭찬이지만 민망함도 느끼는 나이기에 그 당당함이 더 부럽나 보다.


인간은 누구나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 한다.

하지만  '굴욕 없는 연예인 A의 졸업사진"처럼 애쓰지 않고 태생부터 매력 있는 사람에게는 반기를 들지 않고 꾸민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매력이라고 깎아내리려는 시선 때문에 '꾸안꾸'란 말이 나오는 게 아닐까?




사실 '저런 자연스러운 스타일이 좋더라'하고 쉽게 말하지만 그 자연스러움이 진짜 내추럴을 뜻하지 않는다는 건 여자라면 모두 안다. 남자들은 모를지도 모르겠지만...


청순의 대명사, 긴 생머리는 찰랑이는 머릿결을 위해서 얼마나 미용실에 주기적으로 가서 유지해야 하는지...

과하지 않게 어깨를 따라 흐르는 머리카락의 웨이브는 미용실 파마로는 절대 나오지 않는 아침잠과 바꾼 나의 손목 노동이 만들어준다는 것을..


화장은 또 어떤가..

자고 나면 쏟아지는 컬러와 제형, 신상들 속에서 더도 덜도 말고 딱 어울리게 맞는 화장을 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는지..

그것도 내 얼굴에다....



나는 요즘 이런 '꾸미지 않은 듯 꾸민 스타일'이 참 좋다.

나라는 사람도 내 글도 그렇게 보였으면 한다.


아주 평범해 보이지만 나를 아끼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면 좋겠다.

의식하지 않는 듯 자연스럽지만 아무렇게나 아닌 정돈된 모습의 나였으면 좋겠다.


박학다식한 글도 못쓰고 유려한 문장도 아니지만 그냥 내 글이 매력적으로 읽혔으면 좋겠다.

엄청  고심해서 썼지만 무심한듯 쉬크하게 쓱 적어내려간 글이고 싶다.


내게 '샴페인 골드빛이 가미된 피치색 블러셔'가 제일 잘 어울린다는 걸, 숱한 도전과 시행착오로 알아낸 것처럼 나에게 찰떡같이 어울리는 글을 만날 때까지..

열심히 '꾸안꾸'한 글을 써 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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