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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맵다 쓰다 Feb 05. 2020

고수는 도대체 왜 먹는 거야?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고작, 고수 3단..


다듬고 있는 옆을 지나쳐가는 것만으로도 향이 진동을 한다.

아니 거의 영혼까지 스며드는 듯하다.

이미지출처: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5704205&cid=42776&categoryId=59916

흙을 털어내고 물에 씻고 억센 줄기를 골라내고 다듬는다.

먹기 좋게 잘라내기 전에 필요한 일련의 손질 작업을 한발 떨어져서 보고 있자니

오늘 고수를 넣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사람들은 고수를 좋아할까?'





사실 나는 다수의 입맛을 맞춰야 하는 직업을 가졌다.

입맛뿐 아니라 영양도 고려해야 하는...

제아무리 영양적 가치가 높아도 사람들이 안 먹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에 입맛이란 관문을 무시할 수 없다.

어쨌든 균형 잡힌 음식을 잘 먹게 하는 것까지가 나의 몫이다.




고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을까? 싫어하는 사람이 많을까?


이 사람들은 고수가 무엇인지 알까? 도 생각해야 한다.

쌀국수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란 명제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얹어준 고수 한 잎 때문에 국 없으면 밥 못 먹는 사람들은 '국이 빠진 한상'처럼 느낄지도 모른다.


나이, 성별 등 입맛의 공통점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대상들에게 음식 한 그릇을 내는 일은

이 작은 고수 한 잎까지  참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사실, 난 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못 먹는 사람의 입장이 이해가 가는 걸까?

직업정신을 발휘해서 고수 한 잎 넣어서 조화되는 맛을 확인도 해보고 최종은 개개인의 취향을 존중해 따로 가져갈 수 있게 준비한다.


그리고 식사시간..

역시나 사람들의 취향은 고수의 향기만큼이나 분명했다.


쌀국수 위를 고수로 산처럼 쌓아가는 사람도 있었고

고수가 대체 뭔데? 하는 사람도 역시나 있었다.

모르고 넣고는 그대로 버려지는 운명의 쌀국수도 보였다.

일부는 멈칫하며 고수 앞에서 발을 멈추고  건너뛰는 사람도 있었다.

예상대로 호불호가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그동안 나는 거의 대부분을 고수 없는 쌀국수를 고수했다.


최대한 향이 나는 향신채소들로 대체해가면서 깻잎순, 쑥갓, 미나리 등..

사촌급, 형제급들... 아무리 비슷한 것을 대체해도 역시 고수는 고수다.

따라갈 수 없는 극명한 그것만의 향기를 가졌다.


대체 불가의 향기!


하루 종일 고수 향이 넘치는 공간에 있다 보니 정말 집에 돌아와서까지 코 밑에서 고수 향이 나는 것 같았다.


'고수는 온몸으로 존재감을 드러내는 재료구나..'

절로 고수를 떠올리게 한다.


따라붙는 묘한 향이 싫었는데 갑자기 고수가 부러워졌다.

작은 잎 하나로도 음식 전체의 분위기를 좌지우지하는 결정적인 맛!!

어떤 걸로도 대신할 수 없는 고수의 정체성...


맛의 분위기를 드라마틱하게 주도하는 고수...

아는 사람은 더 중독적으로  열광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매력?



나는 어떤 것과 닮았을까?

익숙한 향신채소인데 빠지지않고 다양하게 쓰이는 양파?

은근하게 우러나오면서  받쳐주는 맛을 내는 배경이 더 익숙한 무?

잘은 몰라도 고수가 아님은 확실하다.


가지지 못한 것이 부러울 때가 있다.

싫지만 부러운 것도 분명히 있다.


가끔, 고수는 싫지만 고수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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