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이 인간이 되는 시간

삼한사온육아 맵+세이(마인드맵 +에세이)

by 맵다 쓰다

#눈물의 모유수유


모유의 장점에 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당연히 아이를 낳으면 모유를 먹는 것인 줄 알았다.

그게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는 그 전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였다


2.50kg 미숙아를 아슬아슬하게 면한 우리 아기는 조리원에서 2주를 보내고 나서야

다른 아이들 태어날 때 무게인 3키로를 겨우 넘겨서 나왔다


아이가 작으니 빠는 힘도 딸리는데 젖먹이는 게 서툴러서 잘 먹이지도 못하는 데다가

내 모유도 잘 나와주지도 않았다


유두 혼동이 온 아기는 그나마 중간에 먹던 분유를 아예 거부하고 모유도 잘 먹으려 들지 않았다.

내가 유축해 놓은 모유를 보고는 시어머니는


“에게, 그것밖에 안나왔니?

엄마가 많이 먹어야되는데 니가 임신했을 때 많이 먹지 않아서 그렇다”

라고 말하셨는데 그때는 어찌 그리 그말이 서러웠을까..


결국 나는 몸에 좋다는 가물치, 장어, 한약, 모유양을 늘이는 차, 두유, 물를 닥치는 대로 먹었다

미역국은 지금 생각해도 질릴정도로 매일 2끼이상 6개월까지 먹었다


이거는 내가 먼저인지 모유가 먼저인지 알 수 가 없었다

마치 나의 사용목적이 아이에게 젖을 주기 위함으로 길러지는 무엇처럼

그래도 아이는 모유를 먹어야지하는 어른들의 시선과 책속에 수많이 나열된 모유의 장점을

놓치는 건 아예 내 선택지에는 없는 듯..


자발적인 눈물의 모유수유를 이어나갔다



# 다리를 절다


젖도 잘 안나오는데다 아기도 작아 빠는 힘도 약하니 먹는 게 오래 걸렸다.

그런데다 아이는 열이면 열 번 , 수유와 동시에 물똥을 쌌다.


의사에게 물어도 유산균을 처방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고 분유로 바꾸기 위해 몇 일을 배골려가면 시도를 하니 모유도 거부하고 나섰다. 의사도 아기가 죽어도 분유를 안먹고 이래저래 시간만 가니 최대한 시도해보다가 조금 빠르게 이유식을 시작하는 걸 권했다.


나도 모유로 어떻게든 잘 키워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조금만 먹으니 2시간 만에 젖을 찾는 아이를 1시간동안 수유하고 다시 기저귀를 갈고 다시 트림을 시키기 위에 어깨에 앉고 삼십분을 토닥이고 잠시 지나면 다시 수유할 시간이 반복되었다.


백일 전에 거의 매일 밤, 침대에 앉아서 잠을 잤다. 아니 졸았다.

양반다리를 하고 수유쿠션을 놓고 아이를 올려두고

아이가 먹는 건지 자는 건지 내가 자는 건지 알수도 없는 날들을 보냈다


당시 신혼집은 오래된 아파트의 1층이였는데 낮에도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한 그 집이 내 마음과 같았다.

남편이 “쿵”소리를 내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면 그 공간에 나와 아이만 남은 것 같았다


잘 못먹는 아이도 예민했고 쉬지못하는 나도 예민해져갔다


당시 새로운 일을 시작한 남편도 일에 힘겨워했고 양 쪽 부모님 모두, 일을 하시니

어디에서도 도움받을 수 없어 매일 잠을 못자서 울고싶은 날들이 계속되었다

몸살난 사람처럼 관절,관절이 부서질 것 같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 덧 백일이 되어갔다.

어른들을 모시고 집에서 백일상을 준비하는데 어머니가 물었다.


“새아가 너 걸음을 왜 그렇게 걷니?”


나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나는 어떤 날은 내리 9시간을 아이를 안았다 내렸다가했고

기저귀를 하루평균 10개이상을 갈아내고 엉덩이를 씻기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업고 서서 밥을 먹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다리를 굽힐 수가 없고 계속 저려왔다


이래선 안되겠다고 침도 맞고 치료도 받았다

포대기에 아기를 안으로 조심히 안고 오십여명이 앉아있는 용하다는 통증클리닉에 할머니들과 나는 나란히 앉아있었다. 다들 “왜 저 새댁이 아기를 데리고 여기 와있나”하는 표정이였다

통증 스테이로이드 주사를 허리와 다리에 맞고 최대한 양반 다리로 앉지 말라는 처방이 내려졌다.


수유 방식을 누워서 하는 걸로 연습해 나갔고 나도 아이도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 마음의 고치는 한의사


계속 몸이 안좋아지자 지역에서 정말 유명하다는 한의원에 갔다.

한 번 진료를 보려면 한 달에 한 번 새벽4시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야

원장에게 진료를 볼 수 있다는 곳이였다.


나는 부원장한테라도 진료를 보겠다고 거의 7시간은 기다렸다.

그런데 그날따라 부원장의 진료가 늦어져서 제일 마지막 대기자였던 나는

원장에게서 진료를 보는 행운을 얻었다.


나는 고관절인지 다리인지가 미세하게 계속 통증이 남아서 아프고

모유가 좀 잘 나오게 하는 약을 지어달라고 요구했다.


진맥을 짚고는 갑자기 한의사가 옆에 서있는 남편에게 물었다



“아내랑 계속 같이 살고 싶어요?”


눈을 동그랗게 뜨면 남편은 대답했다


“예?”


한의사는 말을 이어나갔다


“만약에 내 와이프면 당장 모유를 끊게 하겠어요.

몸 안에 에너지라곤 없는데 어떻게 모유를 만들어내겠어요. 다리보다 모유늘이는 것 보다 몸부터 정상으로 회복시켜야 된다구요”


그리고는 나를 보면서 말했다


“힘든데 너무 애써서 하지 말아요 엄마가 건강해야 모유도 건강하지 않겠어요?”


.....




그 한마디에 나는 진료실에 앉아 소리내어 엉엉 울어버렸다.

너무 소중하고 예쁜 아기지만 인간의 일차원적인 생물학적 본능이 우선이였다.

먹고 싸고 자는 것의 한계를 나는 유리 위를 걸어가듯 불안에 떨며 가고있었나보다.

아등바등 애쓰는 내 모습을 고작 진맥하나에 신랑도 아니고 가족도 친구도 아닌

한의사에게 들켜버렸지만 참고 있던 무언가를 터뜨려준 느낌이였다.



내가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내는지 단 한번도 본적없고 들은 적 없는 사람에게서

아이를 낳고 첫 위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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