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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씩씩한 클라이머 Feb 24. 2024

3. Manner maketh man

벽에 붙는 것부터 쉽지 않았던 첫 혼클 일기

1.

지난 연휴 때 내가 다니는 헬스장도 문을 닫고 클라이밍 강습도 쉬는 틈을 타서 예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클라이밍장 중 한 곳으로 혼클(나홀로 클라이밍)을 다녀왔다.


이번에는 강습 목적으로 클라이밍장에 가는 게 아니라 진짜 혼클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떨리고 많이 설렜다. 전날 미리 짐을 챙기면서 손가락 테이핑을 할 붕대, 초크백, 암벽화, 혹시 손을 다칠 때에 대비한 연고와 반창고, 클라이밍 후 손을 씻고 바를 핸드크림, 그리고 내 첫 암벽화(!) 등 각종 물품을 바리바리 챙겼더니 백팩이 가득 찼다. 나는 보부상처럼 다니는 걸 싫어하고 가능하면 짐을 최소화하는 편이라 평소에는 작은 가방이나 주머니에 이어폰·신용카드·핸드폰·립밤만 넣고 다니는데, 1박 2일 여행도 아니고 집에서 20분 거리의 클라이밍장에 가면서 큰 백팩이 꽉 찰 정도로 짐을 챙겨간다는 게 웃겨서 잠깐 혼자 웃었다.


2.

사실 연휴 기간이라 클라이밍장이 텅텅 비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그런데 입구에 왜 이렇게 사람이 많지...? 줄을 서서 보니 나를 포함해서 적어도 7명이 일일 이용권을 끊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럴 수가. 입구에 사람이 이렇게 많으면 안에는 얼마나 많은 걸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내 차례를 기다리다가 이용권을 구매하자마자 탈의실로 직행해서 사물함에 짐을 보관하고 나왔다. 그리고 암벽 주위의 엄청난 인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이번이 네 번째 클라이밍장 방문이었는데,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야 할 정도로 이용객이 많은 적은 처음이라 얼떨떨하고 신기했다.


초보가 가기 좋은 클라이밍장 중 하나라고 해서 일부러 찾아간 곳인데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초보는 나밖에 없는 것 같았다. 다양한 기술을 구사하며 거의 암벽에서 날아다니는 것 같은 분들을 보니 너무 대단하고 멋져서 입이 떡 벌어지는 동시에 이 고수들 사이에서 왕초보용 문제를 풀 생각을 하니 조금 쑥스러워졌다. 하지만 쑥스러운 건 쑥스러운 거고, 연습을 하러 연휴에 일부러 클라이밍장에 왔으니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가야 하지 않겠는가.


스트레칭존에서 몸을 풀면서 다른 분들이 클라이밍을 하는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가 강습벽에 있는 제일 쉬운 문제에 도전했다. 이제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한 번에 성공해서 내심 뿌듯했다. 이어서 본격적으로 암벽에 있는 2-3단계 문제에 도전해 보려고 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암벽에 붙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암벽에 여러 단계의 문제가 같이 있는 데다가 먼저 문제를 진행 중인 사람과 루트가 겹치면 안 되므로, 내가 풀고 싶은 문제가 있는 암벽에 누가 있으면 그 사람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눈치 게임을 하다가 내가 먼저 튀어나가 벽에 붙는 데 성공하면 문제에 도전하고, 나보다 먼저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문제를 푸는 모습을 구경했다. "저런 구간은 저렇게 지나가야 하는구나." "와, 저게 바로 힐훅*이구나! 나도 빨리 배우고 싶다!" "어떻게 저런 무브가 가능하지? 예술이다!" 고수들의 클라이밍 모습을 보면서 혼자 속으로 감탄도 하고 나도 저런 기술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도 하느라 바빴다.


*힐훅: 발 뒤꿈치(heel)를 홀드에 거는(hook) 기술


자리를 옮겨 다니며 실컷 구경을 하다가 저 정도면 무난히 풀 수 있을 것 같은 3단계 문제가 눈에 띄었다. 홀드 사이의 거리가 멀어 보이긴 했지만 그냥 위로 쭉 올라가면 될 것 같았다. 기쁜 마음에 주변을 한 번 살피고 바로 벽에 붙었는데, 여기서 한 가지 실수를 했다. 같은 암벽에 있는 다른 문제의 루트를 꼼꼼하게 확인하지 않은 것이다. 내가 풀려던 문제가 있는 벽은 U자 형태였는데, 내 문제는 U자의 끝부분에 있었다. 왼쪽 벽에는 다른 문제가 있었고 해당 문제를 먼저 풀고 있는 분이 계시기는 했지만 나랑 루트가 겹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내가 간과한 건 해당 문제의 진행 방향(↗)과 탑 홀드 위치이다. 탑 홀드가 내 문제의 탑 홀드와 가까웠기 때문에 내가 막 벽에 붙었을 때는 루트가 겹치지 않더라도 해당 문제를 진행 중인 분과 내가 각자의 탑 홀드에 가까워지면 높은 위치에서 서로 부딪칠 위험이 었었다.


다행히 내가 벽에 붙자마자 어떤 분이 "거기 루트 겹쳐요!" 라고 친절하게 알려주신 덕분에 바로 죄송하다고 사과하고 내려왔다. 체험 강습 분명히 클라이밍장 매너배웠는데 이런 실수를 해서 민망하긴 했지만 사고가 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클라이밍을 할 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클라이밍을 하는 거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나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클라이밍장 매너를 더 잘 지켜야겠다는 게 첫 혼클을 통해 얻은 교훈이다: )


왕초보의 클라이밍 노트 #2 클라이밍장에서 지켜야 할 매너


체험 강습 중에 이미 배웠던 내용인데 이번 일을 통해 매너를 잘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깨닫게 됐다!


클라이밍장 매너는 다음과 같다.


암벽에 붙기 전에 먼저 클라이밍을 하고 있는 사람과 루트가 조금이라도 겹치지 않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예상 착지 지점이 겹치는 경우에도 붙으면 안 된다!

클라이밍을 할 때 외에는 매트에 서있거나 앉지 않는다

매트에 소지품을 올려놓지 않는다(클라이밍을 하던 사람이 매트로 떨어졌을 때 내 소지품 때문에 다칠 수 있다)

맨발로 클라이밍을 하지 않는다

손에 초크를 묻힐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가루가 날리지 않게 조심한다. 그리고 매트 주변에 있는 초크백과 초크는 다른 사람의 물건이기 때문에 쓰면 안 된다!


세 번째 항목을 보면 나의 첫 체험 강습이 생각난다. 위에 쓴 클라이밍장 매너를 배울 때였는데, 강사님과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잠시 어색해졌던 기억이 있다.


강사님: "매트에 ㅇㅇ님의 핸드폰을 올려뒀는데 클라이밍 중이던 사람이 그 위로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요?"

나: "제 핸드폰이 박살 나요!"

강사님: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 그 사람이 다치겠죠;;"

나: "아하......^^......"


나와 다른 사람의 안전을 위해 클라이밍장 매너를 잘 지켜서 매너 있는 클라이머가 되야겠다!


Manner maketh 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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