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길목

닦아낸 자리, 남겨둔 시간들

by 최순옥
프롤로그 — 닦아낸 자리


2026년 3월 20일.

연가를 냈다. 쉬기 위해 만든 하루였지만, 몸은 새벽부터 움직이고 있었다.

전기업체 사장님과 선을 맞추고, 방수 페인트의 마감 하나까지 조율했다. 공사는 확인과 대화, 그리고 건의의 연속이었다. 신경 쓸 일들이 많아 마음이 쉬지 못했다.


사람들이 떠난 뒤에야 집은 비로소 나에게 돌아왔다. 그리고 그때부터 진짜 일이 시작됐다. 내부는 정리로 힘든 시간이었다.



닦아낸 자리에 남은 것

거실 진열장을 밀어내고, 냉장고 뒤편에 쌓인 먼지를 걷어냈다. 창틀 구석의 오래된 흔적들까지 하나씩 닦아냈다. 마당을 정리하고 이불 빨래까지 마쳤을 때는 오후 네 시였다.


그제야 거실 한가운데에 앉았다. 조용해지자 눈물이 먼저 왔다. 깨끗해진 자리일수록 아버지의 부재는 더 또렷해졌다. 지운 것이 아니라 더 선명해진 시간 같았다.


애써 외면해 온 마음이 올라왔다. 손끝이 떨리고 시야가 흐려졌다. 나는 한참을 그대로 앉아 있었다.

오늘의 눈물은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남겨두는 것이었다.

다시, 하루를 버티는 일


2026년 3월 21일.

방수 페인트 마무리와 차고 돌 깔기까지 끝냈다. 몸이 다 쑤시고 손 마디마디 저리고 아팠다. 손끝부터 온몸이 저릿하게 번졌다.


몸은 무겁게 가라앉았지만, 일을 마쳤다는 안도감이 따라왔다. 빵빵이와 산책을 나갔고, 영태 오빠네 집 앞에서 멈췄다. 흰둥이가 반갑게 다가왔다.


경희 어머니는 굽은 허리로 유모차에 의지해 천천히 걸으셨다. 그럼에도 나를 보자 먼저 아버지 안부를 물으셨고, 환하게 웃어주셨다.

그 웃음이 오래 남았다.

영태 오빠의 아버지는 반갑게 맞으며 말씀하셨다.

“넌 참 귀엽고 예뻤다. 아주 사랑스러웠다.”

그 말에 어린 시절과 아버지가 함께 떠올랐다.

그리고 이어진 한마디.

“열심히 살아라.”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잘 살아라.”

그 한마디가 깊이 남았다. 나는 잠시 멈춰 생각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다래나무 아래, 박새의 소리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닭볶음탕과 감자채볶음, 오이생채, 호박버섯볶음, 갈비찜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들고 마당으로 나갔다.


다래나무 아래에 앉았다.

작년에 둥지를 틀었던 박새일까, 나뭇가지 사이로 맑은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소리를 들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조용히 제 시간을 이어간다. 하우스를 정리한 자리에 파를 나란히 심었다. 열 개의 뿌리가 흙 속으로 들어갔다.

3흙을 덮으며 생각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시간은 계속된다는 것을. 마당 한켠, 흙과 돌 사이로 냉이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층에서 꺼낸 시간들

오후가 되어 이층으로 올라갔다. 오래된 상자를 꺼내 뚜껑을 여니 시간이 함께 열렸다. 아이들의 성장 사진, 조카들의 웃음, 아들의 백일과 돌사진이 이어졌다.


흑백사진 속 젊은 아버지와 어머니. 아버지는 단단했고, 어머니는 환하게 웃고 계셨다. 계절마다 집을 채우던 어머니와 그 곁을 지키던 아버지.

나는 그 사이에서 자라났고 지금도 그 위에 서 있다. 지나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는 시간들이다.


에필로그 — 남겨두는 것들

집은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닦아낸 자리마다 더 또렷해지는 기억들.

그래서 이제는 안다. 모든 것을 정리할 수 없고, 굳이 다 정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남겨두어야 할 것들이 있다.

다음 주중에는 아버지를 뵈러 가서 이 집의 변한 모습과 공사한 사진들을 보여드릴 생각이다. 그 시간을, 꼭 함께 나누고 싶다.

작가의 말

사람은 정리하며 살아간다. 집을 치우고, 물건을 버리고, 하루를 닫는다. 하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다.

닦아낼수록 선명해지는 감정, 비울수록 깊어지는 기억. 그래서 이제는 안다. 그대로 두는 것도 하나의 방식이라는 것을.

오늘의 눈물은 약함이 아니라, 시간을 붙잡고 있는 마음이다.


다음 이야기 예고

마당에 심은 파가 자라나는 이야기를 적어보려 한다.

작은 뿌리가 흙을 밀고 올라오듯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다시 찾으면 연둣빛이 올라와 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보며 또 아버지를 떠올릴 것이다.


자라나는 것을 바라보는 일은 남아 있는 시간을 바라보는 일과 닮아 있다.

봄은 그렇게, 이미 와 있었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