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로 올라오는 것들
2026년 3월 어느 날.
며칠 전 묻어둔 파를 보러 마당에 나갔다.
아침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흙은 조용했다. 막 덮어둔 것처럼 아무 일도 없는 얼굴이었다.
쪼그리고 앉아 손끝으로 표면을 살짝 눌렀다.
차갑고 단단했다. 손끝에 남는 감각이 오래 이어졌다.
그 아래를 알 수 없다는 게 이상하게 마음에 남았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 시간이 모여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가 떠올랐다.
늘 그 자리에 계셨지만 나는 그 시간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곁에 있으면서도 얼마나 깊이 버티고 계셨는지.
아무 말 없이 지나온 날들이 뒤늦게 무게를 얻는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갔다.
흙 위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나뭇가지가 잠시 흔들리다 멈췄고, 마당은 다시 고요해졌다.
나는 잠시 더 앉아 있다가 천천히 일어났다.
무릎에 묻은 흙을 털어내고, 한 발 물러섰다.
보이지 않는다고 멈춰 있는 것은 아니다.
시간은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먼저 움직인다.
돌아서는 길에 뒤를 한 번 더 보았다.
그 자리는 그대로였고, 그래서 더 분명했다.
변한 것이 없어 보일수록,
안에서는 이미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추신
담이 들어 목이 돌아가지 않는다.
오늘은 로봇처럼 움직였다.
그래도 하루는, 무사히 지나갔다.